짓지도 않은 죄를 지금 자백하는 까닭
당장 닥친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경향
결백하고 떳떳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없는 죄를 자백할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1989년 이후 미국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후에 DNA 검사에서 무죄로 밝혀진
사람은 266명. 그 중 25%는 수사기관에서 자신이 범인이라고 거짓 자백을 했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의 스테파니 메이든 박사팀은 용의자들이 가짜로 자백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두 가지 모의실험을 했다.
첫 번째 실험은 38명의 여학생과 43명의 남학생 등 총 81명의 심리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였다. 죄를 짓거나 부도덕한 행동을 한 적이 있는지 묻고, 두
가지 선택지에서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첫 번째 선택지는 인터뷰 직후 각자 대답한
내용에 대해 반복질문에 꽤 오랜 시간 대답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선택지는 이번에는
인터뷰로 끝나고 몇 주 뒤에 경찰을 만나 인터뷰 때 대답한 내용에 대해 자세하게
진술하는 것이었다.
메이든 박사는 “이들은 당장의 곤란함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며 “몇 주
뒤에 경찰을 만나면 더 상세하게 진술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질문공세를 피하려
들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 연구진은 93명의 여학생과 50명의 남학생 등 총 143명의 심리학과
학생에게 과거 죄를 짓거나 부도덕한 행동을 했는지 물었다. 이번에는 첫 번째 실험에서
주었던 선택지를 할 시기를 바꿔 내놓았다. 즉 당장 경찰을 만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할 지, 몇 주 뒤에 연구실에 다시 와서 반복 질문에 대답할지
고르게 했다.
참여자들은 이번에도 당장 곤란한 일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즉 당장 경찰을
만나지 않고 몇 주 뒤에 반복 질문에 답하겠다고 했다. 결국 참여자들은 당장 코앞에
닥친 잠깐의 곤란을 피하기 위해 멀게 느껴지는 일의 어려움을 애써 무시했다.
메이든 박사는 “자백 범인이 무죄로 밝혀진 사건을 보면 모두 중벌에 처해지는
극악한 범죄였고 결국 DNA 증거가 나왔다”며 “왜 용의자들이 그렇게 끔찍한 죄를
저질렀다고 거짓 자백했는지 밝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그 까닭을 수사기관 취조 방식에서 올 수도 있다고 보았다. 취조 수법
가운데 용의자 혼자 고립시키거나 가짜 증거를 들이밀면 용의자가 자백하려는 마음을
갖곤 한다는 것이다. 유죄 판결로 옥살이를 하게 되겠지만 취조 당시에는 먼 미래의
일로 느껴진다는 것.
메이든 박사는 “용의자는 자백 할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두 가지를 놓고 어떻게
할까 정하려 한다”며 당장 눈앞의 곤란을 벗어나려는 마음이 더 결정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결과는 ‘법과 인간행동(Law and Human Behavior)’ 저널에 실렸고 미국
과학논문 소개사이트 유레칼러트 등이 18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