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10명 중 9명 ‘불법 존엄사’ 당해
국립암센터, 전국 17개 병원의 암 사망환자 분석
서울대병원이 18일 “지난해 말기 암 환자 436명에 대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했다”고 밝힌 데 이어, 국립암센터 연구진이 2004년 국내 17개 병원에서 숨진
암환자 사례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환자 10명 중 9명(89.5%)은 연명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법으로는 금지하고 있는 존엄사가 국내 의료 기관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발표는 대법원에 대한 압력”
서울대병원과 국립암센터의 이러한 발표는 국내 최초의 존엄사 대법원 판결(21일)을
앞두고 나와 일부에서는 “서울대병원 등이 대법원을 향해 ‘이번만큼은 존엄사를
인정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작년 이 병원에서 숨진 말기 암환자 656명 중
대다수인 436명(85%)이 가족 또는 환자 본인의 요구에 따라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삶을 마감했다. 또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 의료사업과 윤영호 박사가 지난 2004년
국내 17개 병원에서 숨진 말기 암환자 1662명의 가족을 상대로 전화 인터뷰한 결과
비슷한 비율인 89.5%가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결국 국내 대학병원 등에서는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가 10% 정도에만 적용되고
있을 뿐, 나머지 90%에게는 법으로 금지된 ‘사실상의 존엄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결론이다.
학술지 ‘암에 대한 지원 치료(Supportive Care in Cancer)’ 온라인 판에 지난
4월말 게재된 국립암센터 윤영호 박사의 논문을 보면 현재 한국 병원에서의 ‘사실상
존엄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가 자세히 드러나 있다.
의료진-가족이 ‘존엄사’ 결정…환자 의사 무시돼
말기 암 환자에 대해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치료를 적용한 경우가 10.5%에 불과한
이유에 대해 유가족의 65.7%는 “의료진의 권고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소생이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에 대해 의료진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고 보호자에게 권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자의 가족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보다는 환자가 존엄스럽게 생을 마감하길 바란다’고
결정한 경우도 27.1%나 됐다. 반면 환자 본인이 존엄사를 원했기 때문에 연명치료를
중단한 경우는 단 3.7%에 불과했다. 결국 환자 본인의 의사는 거의 무시되고 의료진
또는 가족의 결정에 따라 ‘사실상의 존엄사’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윤영호 박사는 “환자 본인은 자신의 최후에 대해 가족들과
의논하기를 꺼리고, 가족들은 연명치료의 의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학력이 낮을수록
연명치료를 더 많이 받는 등 환자의 생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며
“연명치료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하며, 환자 본인이 자신의 최후에 대한 결정을
미리 내리는 ‘사전의료 지시서’에 대한 법적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