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뇌는 ‘기억 대청소’ 한다
잘못자면 기억 뒤얽켜…시냅스 지우고 만드는 과정이 수면
잠자는 동안 뇌는 필요 없는 기억을 지움으로써 다음날 새로운 정보가 원활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이러한 ‘청소’가 이뤄지지 않아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두뇌 회전도
느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신경생물학과 폴 쇼, 제프리 돈리 박사 팀은 잠은 왜 필요하며,
잠은 뇌의 기억력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초파리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연구진은 뇌 신경세포 사이를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는 부위인 ‘시냅스’가 잠자는
동안에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잠 잘 때 뇌는 중요하지 않은 기억을 담고 있는 시냅스를 삭제하고,
새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냅스를 새로 만들어냄으로써 뇌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냅스 연결은 기억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뇌는 무한대로 새 시냅스를
만들 수 없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담은 시냅스를
지우는 과정이 바로 수면이 필요한 이유”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초파리가 실험 대상으로 선택된 것은 초파리의 수면이 인간의 수면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파리와 인간은 잠을 잘 못 자면 다음날 더 자려고 한다. 연구진은 인간의
뇌보다 구조는 간단하면서도 수면 양상은 비슷한 초파리 뇌에 다양한 실험을 함으로써
수면과 기억력의 관계를 밝혔다.
관찰 결과, 초파리는 잠잘 때 신체활동이 줄어들면서 뇌에서 새로운 시냅스가
만들어졌다. 반면 초파리에게 잠을 못 자게 하면 신체활동이 감소하지 않으면서 새
시냅스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2006년 ‘사이언스’ 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초파리를 대상으로 잠과
기억간의 관계를 밝힌 바 있다. 당시 연구진은 실험용 초파리 수컷을 난생 처음으로
암컷과 합방시키면서 한 가지 트릭을 썼다. 암컷 초파리 중 일부는 이미 짝짓기를
끝낸 암컷이거나, 아니면 수컷인데 암컷 냄새를 풍기도록 했다. 수컷 파리의 구애를
이들 암컷들은 당연히 거부했다.
이틀간 이들 파리를 격리시킨 뒤 다시 합방시켰지만 실험용 수컷 초파리들은 지난번에
퇴짜를 놓은 암컷 초파리에게는 교미 시도를 하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기억이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잘 잔 파리일수록 기억력이 좋았다.
연구진은 비슷한 실험을 이번에도 했지만, 이번에는 초파리의 뇌에서 수면과 관련되는
유전자 3개를 찾아내 이 유전자에 조작을 가함으로써 잠과 기억과의 연관성을 좀더
분명하게 밝혀냈다.
쇼 박사는 “경제난으로 직업이나 장래에 대한 걱정이 산더미 같은 요즘 잠이
안 오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럴수록 충분한 수면은 중요하다”며 “잠을 제대로 자야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에 발표됐으며, 미국 과학 논문 소개
사이트 유레칼러트,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온라인 판 등이 2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