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이식 수술, 한국에서 할 수 있나?
“법-윤리 장벽 제거되면 가능”
프랑스, 중국에 이어 세계 4번째로 미국에서 안면 전면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화제다.
지난 17일 미국 클리블랜드 병원 마리아 지미오나우 박사 팀은 호흡기 없이는 숨도
못 쉬던 여성 환자에게 뇌사자의 얼굴 조직을 이식해 얼굴의 80%를 재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의료진 8명이 22시간 동안 매달린 안면 전면 이식 수술은 뇌사자가 남기고 간
얼굴 피부는 물론 얼굴 신경, 모든 얼굴 근육, 윗입술, 코와 코 일대, 치아를 포함한
위턱을 살아 있는 환자의 얼굴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얼굴이식 수술을 받기 전 여자 환자의 얼굴은 눈꺼풀 윗부분과 이마, 아랫입술과
아래턱 부분만 남아 있을 정도로 부상이 심각했다. 영양 공급과 호흡은 기계에 의존하는
상태였다.
클리블랜드 병원의 생명윤리담당 책임자인 에릭 코디시 박사는 “이번 수술에서
얼굴 생체조직 기증부터 수술 완료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없었다”면서 “이번 수술은
단순한 성형수술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대 임상의료윤리센터 마크 지글러 박사는 이번 수술에 대해 “대단히
높은 수술 실력으로 이뤄낸 혁신적 성공 사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얼굴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는 2005년 프랑스에서 개에 얼굴을 물린 여성,
2006년 곰에 얼굴을 공격받은 중국 남성, 2007년 악성 종양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프랑스 남성이 있다. 얼굴 전면을 이식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얼굴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장기인가
한국에서 이러한 얼굴이식 수술은 이뤄질 수 있을까. 서울대 치대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이종호 교수(대한악안면 성형재건외과학회 부회장)는 “국내의 경우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간, 신장, 심장 같은 장기의 이식은 이식과 관련된 의학과 법 제도가 잘
정비돼 있으나 얼굴이식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아직 논의가 돼 있지 않다”며
“얼굴이식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윤리적 토론이 먼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미세조직 수술 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에 얼굴 공여자가 있고 윤리적, 법적 문제도 해결된다면 한국에서도 성공하지
못할 수술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얼굴이식 수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의술이 달려서라기보다는 윤리적,
제도적 문제 때문이다. 우선 얼굴이식 수술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여러 윤리위원회
및 이식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백롱민 교수는 “남의 얼굴을 이식한다고 해서 그 전의
얼굴은 완전히 없어지고 다른 사람 얼굴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얼굴이식술은
얼굴의 근육과 근육, 신경과 신경을 이어 주는 복합적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렇게 연결한 신경 및 근육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적어도 9개월~1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얼굴이식 뒤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표정 근육에 관여하는
신경세포 및 감각신경이 살아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얼굴이식의 부작용은 이식한 조직이 살아나지 못했을 때 나타난다. 이식 부위가
곪는다든지, 피부색이 변한다든지, 근육의 움직임이 없어진다든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공공의료과 이표희 사무관은 “현재 장기 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있지만 얼굴은 장기 이식 범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만큼 법적 잣대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장기 이식에 관한 법률은 장기 이식의 범위를 콩팥, 간장, 심장, 폐, 각막,
작은 창자, 골수, 췌장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얼굴 이식에는 또한 윤리적 문제도 따른다. 얼굴은 특정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허용한 뇌사자라고 해도 정체성을
대표하는 얼굴의 이식을 허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부터,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이식
받은 사람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 문제도 있다.
실제로 2005년 개에 얼굴을 물려 최초로 안면이식 수술을 받은 프랑스의 이자벨
디누아르 씨는 자신의 원래 얼굴과 기증자 얼굴이 뒤섞인 모습에 혼란스러움을 느낀다고
심경을 밝힌 바 있다.
찬성 입장 “필요한 환자에 새 삶을 준다”
얼굴이식 수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당한 환자는 사람들 만나기를 꺼려 실내에서만 생활해야 한다는 점을 든다. 얼굴
이식으로 새 삶을 찾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얼굴 역시 이식수술의 대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2008년 영국 의학전문지 ‘란셋(Lancet)’ 8월 22일자에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얼굴 부분 이식 수술을 한 의료진들은 “합병증 등 더 연구할 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얼굴이식 수술이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며 앞으로 얼굴이식 수술이 더욱 많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2007년 곰의 공격을 받아 얼굴을 다친 프랑스 남자에게 코와 입, 턱, 뺨 부위의
부분 얼굴이식 수술을 집도한 프랑스 앙리-몽도 병원 로랑 랑티에리 박사는 “수술
6개월 뒤 이 환자는 미소를 짓고 눈을 깜빡일 수 있게 됐다”며 “이는 얼굴 신경이
회복됐다는 의미로, 이식된 얼굴이 기능을 제대로 해낼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고
말했다.
반대 입장 “평생 면역억제제 복용 등 문제”
한편 얼굴이식술에 대해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얼굴이식을 받은
환자는 면역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며 △수술 뒤 달라진
얼굴로 인한 정서적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등을 주요 문제점으로 꼽는다. 이들은
또한 얼굴을 심장, 간처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장기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2006년 얼굴이식 수술을 받은 중국 환자는 면역억제제 복용을 거부하다가
수술 2년 3개월 만인 지난 7월 사망 했다. 전문가들은 안면이식 뒤 거부반응 문제가
평생 지속되며, 면역억제제 복용으로 암 발병률이 높아지는 점도 지적한다.
영국에서도 얼굴전체 이식 수술이 추진되고 있지만 윤리적 문제 등으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고 영국 언론들이 최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