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지도]한국인 유전체서열 세계 4번째 해독
맞춤의학 혁명 시작…어디까지 공개하나 사회적 합의 필요
한국인의 유전체 서열이 모두 해석됐다. 개인의 유전체 서열이 모두 해석된 것은
세계에서 미국(2명), 중국(1명)에 이어 4번째다.
가천의과학대학교 이길여암·당뇨연구원 김성진 원장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물자원정보관리센터와
공동으로 ‘한국 표준 유전체 프로젝트’를 결성하고, 한국인 한 사람의 유전체 순서를
모두 해독했다고 3일 밝혔다. 그 한 사람은 김성진 원장 본인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본인의 DNA를 모두 공개한 김성진 원장은 “DNA가 이중나선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밝혀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도 자신의
DNA 서열을 모두 공개했다”며 “새로운 의학의 발전을 위해 DNA 서열을 공개하는
것을 개인적인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간이 선수 쳐 앞으로 민-관 경쟁체제 예상
이길여암당뇨연구원의 이번 한국인 유전체 해석은 정부가 추진하는 관련 연구에
앞서 민간 기관이 개가를 이뤘다는 점에서 앞으로 유전자 관련 연구에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도 지지부진하던 정부 추진 연구에 민간 연구기관이 뛰어들면서 양상이
급변한 역사를 갖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이 진행한 인간게놈프로젝트(HGP)가
시간을 오래 끌자 NIH 출신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내가 직접 하겠다”고 나서면서
민-관의 경쟁 양상으로 바뀌었고, 유전체 해독 속도가 크게 빨라졌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번 이길녀암당뇨연구원의 이번 발표는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단체에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한국에서는 1999년 과학기술부에서 유전체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기본정책을 수립했고
같은 해 12월 21세기 프론티어 사업 중 최초로 인간유전체 기능연구사업단이 출범했다.
현재 3단계 사업(2006~2010)이 진행 중이다.
사업 결과 다양한 암 진단 및 예후 판정에 활용 가능한 방법들이 발굴됐고 간암,
위암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 이들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물질까지 만드는 일부
성과를 거뒀다.
연구팀은 30억 개의 핵산을 일일이 분석하는 방법이 아니라 핵산을 50개씩 묶어서
분석한 후 이 묶음들을 다시 조합하는 방법을 사용해 분석에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인류는 아프리카인, 서양인, 아시아인의 세 부류로 나뉜다. 아시아인은 다시 북아시아인과
남아시아인으로 나뉘는데, 한국인은 중국, 만주, 몽골, 한반도 및 일본으로 연결되는
북동 아시아인의 후손으로 유전적으로 중국인보다 일본인과 더 가깝다.
이번에 분석된 한국인 유전자 정보에는 김성진 원장의 유전체 서열 분석 결과뿐
아니라 현재까지 유전자와 신체적 특징, 질병과 관련해 진행된 전세계의 연구 결과가
반영돼 있다.
유전자(gene)는 부모의 신체적 특징을 물려주는 개개의 유전인자를 말하며, 유전체(genome)는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유전자의 전체 조합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유전의학과 관련된 전세계 1만 2000여 건의 연구 결과 중 아시아인에
해당하는 1600여 개 논문을 선택해 김 원장의 유전체 서열 결과와 비교했다.
연구 결과 김 원장의 유전체는 이전에 공개된 제임스 왓슨의 유전체와는 0.05%,
최근 발표된 중국인 유전체와는 0.04% 정도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차이가 눈과 피부색,
인종, 생김새부터 체질, 질병 감수성 차이까지 만들어낸다.
전문가들은 향후 2~3년 내로 한 사람의 유전체 서열을 해독하는 데 150만 원 이내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16개국 연구진이 모인 국제적인 유전체 지도
해독 프로젝트인 ‘게놈(Genome) 프로젝트’가 1990년부터 13년 동안 약 2조 7000억
원을 투입해 2003년 한 사람의 유전체 지도를 최초로 작성한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2007년 발표된 미국 셀렐라 제노믹스 사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 유전체 서열 해석에는
4년 간 총 1000억 원이, 2008년 4월에 발표된 제임스 왓슨 박사의 서열 해석에는
약 4개월 간 15억 원이 소요됐다. 김 원장의 유전체 서열 해석에는 3개월 간 2억
5000만 원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생물자원정보관리센터 박종화 센터장은 “정확한 지도를 만들수록 정확한
목표를 찾아갈 수 있다”며 “유전체 서열을 모두 분석했다고 해서 연구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유전체 연구를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빠르면 5년 뒤쯤 자기 유전정보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시대가 오거나
병원에 갈 때 자기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가면 의사가 유전자 정보를 먼저 확인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개인의 유전체 지도가 완성되고 질병 관련 유전학이 더욱 발전하면 특정 질환에
더 취약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을 미리 알아낼 수 있다. 이를 통해 각 개인은 질병
발생을 예방하거나 또는 각자의 유전형에 적합한 치료법을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의 유전 정보를 이용한 의료 사업은 이미 시작됐다. 일본의 제노마커 사는
500만원 정도의 비용을 받고 개인의 유전체를 분석해 뇌중풍, 당뇨병 등 주요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분석해 예방법을 알려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번 유전체 지도 완성을 앞으로 어떻게 비즈니스 차원에서 활용할지에 대해 김
원장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김 원장은 “유전체 지도가 완성됐다고 바로 질병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며 “유전체 지도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려면 질병과 관련된 연구
결과들을 검증하는 대규모 임상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표준 유전체 프로젝트는 이번에 완성된 한국인 유전체 지도 등 관련 자료를
자체 웹사이트(www.koreagenome.org)에서 관심 있는 의학자들이 내려 받을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연구팀은 한국인의 유전자 정보를 지속적으로 해석하고 표준화함으로써 한국인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인들을 위한 맞춤의학 인프라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