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범인은 전형적 사이코패스”

극도의 반사회성 감추고 있지만 노출 안돼

“고시원 범인은 전형적 사이코패스”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고시원에서 불을 지르고 미리 치밀하게 준비한

흉기로 불을 피해 건물 밖으로 나오려 하는 고시원 거주자 6명을 숨지게 하고 7명에

중태에 빠뜨린 정 모 씨(31세)의 증세에 대해 국내 의학계에서는 대체로 ‘정신분열증은

아니고 사이코패스에 가깝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이코패스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로버트 헤어 박사의 저서 '진단명: 사이코패스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란 용어는 독일학자 슈나이더가 1920년대에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겉모습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지만 내면은 반사회적인 경향을 띤 성격장애자. 이중인격(double

personality)이나 다중인격(multiple personality)과는 다른 정신병의 일종으로 주로

범죄에서 많이 알려진 정신이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이코패스와 혼동돼 사용되는 용어가 사회병질자(반사회적 이상행동자), 반사회적

성격장애다. 사회병질자라는 용어가 사이코패스보다 정신병이나 정신이상의 느낌이

덜 들어 그렇게 사용되기도 한다.

증상이 전적으로 사회적 영향과 초기 경험에 의해 서서히 진행된다고 주장하는

사회학자나 범죄학자 등은 사회병질자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반면, 심리학적,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정 씨의 경우를 “진단해 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사이코패스에

근접한 케이스”로 잠정 파악하는 것은 그의 범행 전-후의 행적이 사이코패스의 정의에

여러 면에서 근접하기 때문이다.

우선 정신의학자와 범죄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점은 “정신분열증

환자는 정 모씨처럼 흉기, 복장 등을 치밀하게 갖추고 사전 계획을 짠 뒤 그 계획에

따라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희의료원 신경정신과 김종우 교수는 “정신분열증 환자는 대체로 횡설수설하고

환청을 듣고 외부 환경의 변화에 둔감한 등 치밀한 계획을 미리 짜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반사회적 사회부적응증’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는 평상시에는

정신과적 분열 증상이 없어 정상인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으며, 따라서 사전 예방이나

격리 치료 등이 힘들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사회에 대한 원한-저주를 무차별 폭력으로 표출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번 정 씨의 살인 행각을 여러 면에서 작년 전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던 버지니아공대의 대량 살인범 조승희 씨 케이스와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 조 씨의 경우도 사건 발생 뒤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이 조 씨에 대해 “일부

이상한 점은 있었지만 이렇게 큰 사건을 저지를 줄 몰랐다”고 했었고, 이는 이번

정 씨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 씨의 경우에 대해 주변 인물들은 △물병과 몇 시간씩이나 ‘대화’를 나누고

△일단 말을 받아주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라도 떠들어대는 ‘종달새적’ 특징을 갖고

있고 △인형 뽑기 오락기에 한 달 월급을 모두 쓰는 등 특이한 점을 발견했지만,

이를 정신병으로는 연결시키지 못했다고 사건이 일어난 뒤 밝혔다.

조 씨나 정 씨 같은 반사회적 사회부적응증 환자들을 흔히 말하는 ‘정신병자’로

분류되고 격리 치료되기 힘든 이유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지금 단계에서 정 씨에 대해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현실도피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방세

17만 원을 낼 수 없어 어려움에 처하면서도 한 달 월급 전체를 인형 뽑기 오락에

쓰는 등에서 이러한 현실도피적 성향이 드러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현실도피적 성향은 사이코패스의 특징 중 하나인 ‘반사회성’과도 통한다.

모든 잘못을 자신이 아닌 외부 탓으로 돌리며,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인 외부 세계에

대해 폭력을 가하는 ‘묻지마 살인’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이코패스적 사회부적응증

환자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 씨의 경우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지만 중학교 때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밝혀졌다. 최근 한국에서 청소년과 사회 소외층의 자살 사례가 부쩍 늘고

있는 것도 사회부적응증의 또 다른 표현이다. 구조 받지 못하는 극도의 좌절감이

경우에 따라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살의 형태로, 때로는 외부에 폭력을 가하는

묻지마 살인으로 나타난다는 해석이다.

정신분열증과 분명히 구분되는 사이코패스는 이처럼 사전 발견이 힘들기 때문에

‘사회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 선결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 교수는 “나보다 일을 적게 하는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보수를 받는다고 느끼는 사회적 불만감이 근본적인 이유일 수 있다”며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쁘다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인 미국과 한국, 일본 등지에서 최근 묻지마 살인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사이코패스를 양산할 수 있는 사회의 구조적 변화 때문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단 한-미-일의 차이라면 반사회적 성격장애 등 정신장애에 대처하는 사회적 대응망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미국의 경우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돈이 없어도 찾을 수 있는 공공 정신보건 시스템이 구축돼 있고 사회적으로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는 반면, 우리는 공공 정신보건 시스템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갖고 있다”며

“사회적 소수자 등 도움이 필요한 구성원을 미리 관리하며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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