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논란 헌법재판소로
환자 가족 “왜 관련 법 안 만들었나?”
회복이 불가능한 식물인간 환자의 가족이 국내 처음으로 법원에 치료를 멈추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낸 지 이틀 만에 위헌 소송을 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기관지내시경 치료를 받던 중 출혈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모(75)씨의 가족은 11일 헌법재판소에 “존엄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국가의 ‘입법부작위’로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위헌 소송을 냈다.
입법부작위(立法不作爲)란 입법기관이나 행정부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 등을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만들지 않은 것을 말한다.
가족들은 “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는 점차 뇌사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며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숨을 거두게 유도하고 싶지만 이를 규정한 법규가 없어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입법부작위 위헌 소송의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특히 “국가가 입법하지 않은 법률은 안락사법(적극적 안락사)이 아니라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자연사(소극적 안락사) 또는 존엄사에 관한 것”이라며
제정돼야 할 자연사법과 안락사를 구분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중환자나 난치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편안하게 죽음을 맞게
하는 ‘안락사’는 한 두 국가를 빼곤 불법으로 돼 있지만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는 환자가 평소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품위 있게 죽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면
‘존엄사(尊嚴死)’를 허용한다.
청구서에 따르면 김 씨가 사실상의 뇌사 상태에 접어들자 가족이 병원 측에 치료
중단을 요청했고, 병원은 처음에는 중단요청에 동의했지만 얼마 후 “법률이 없어 중단할
수 없다. 자칫하면 살인죄로 의사가 처벌받을 수 있다”며 거절했다.
가족들을 대리해 사건을 맡은 신현호 변호사는 “현재 존엄사에 대한 법률이
제정돼 있지 않은 데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막는 규정도 없는데
이는 헌법상 인간으로서의 행복추구권, 환자의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의 가족은 “인공연명장치 등 생명연장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살아있는 생물체’ 상태로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고
있지만 사회적 인식은 자연스러운 죽음, 나아가 편안한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치유치료, 회복치료 등의 적극적 치료가 아니라 단순히 죽음을
연장시키는 치료는 입법을 통해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가 입법부작위 위헌성을 받아들이거나 법원이 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을 수용하면
‘안락사 논란’이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