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상간 금기는 문화적 금기일까?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문명사회와 수렵채집사회를 막론하고 인간 세계 어디에서나 가까운 친족 간의 성관계와 결혼을 금지하는 근친상간 금기가 나타납니다.
근친상간은 실제로 우리 건강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쳐요. 비슷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끼리 번식을 하면 몹쓸병을 가진 유전자가 전달되어 후손에게 발현될 위험이 커집니다.
근친상간 금지는 매우 오래된 금기입니다. (사진: Shutterstock/file404)
가령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근친혼 때문에 후손들이 유전병에 걸리고 음식을 씹지도 못할 정도로 주걱턱이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주걱턱을 ‘합스부르크 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결국 합스부르크 왕가는 몰락했지요.
이렇게 근친상간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인간이 문화적으로 근친상간 금기를 발명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빅토리아 왕조는 유전병인 혈우병 때문에 고생했죠. (사진: Shutterstock/Gotzila Freedom)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으로 모든 어린아이는 부모를 성적으로 욕망하나 아버지라는 존재가 나타내는 금지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고, 결국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이 사회에 적응하는 단계로 나아간다고 설명했죠.
하지만 프로이트의 주장은 검증이 불가능합니다. 또 생물학적 관점에서 근친상간이 생존과 번식에 치명적이라면 근친상간 금기의 일부에는 자연선택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신분석학의 시조 프로이트와 그의 어머니입니다. (사진: Shutterstock/Everett Historical)
그런데 19세기에 웨스터마크라는 인류학자가 아주 재밌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바로 ‘아주 어린 시절에 같이 자랐던 사람은 서로 성적인 접촉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입니다. 이를 ‘웨스터마크 효과’라 부릅니다.
에드워드 웨스터마크는 1891년에 남자들이
자기 어머니나 누이들과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적 규율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남자들이 자신들과 함께 생활해온 여자들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매트 리들리(김윤택 역), "붉은 여왕", 김영사, 2006, p. 429.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건 매우 간단하고도 유용한 심리적 규칙입니다. 혈연을 알아보는 복잡한 규칙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저 ‘어릴 때부터 같이 살았던 사람=성관계를 해서는 안 되는 근친’으로 학습하고 마음에 기록하는 겁니다. 더불어 회피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혐오감이나 역겨움 같은 감정과 연결하고요.
웨스터마크 효과는 아주 그럴듯합니다. 당장 여러분부터 형제자매와 성관계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강한 혐오감이 올라오죠?
함께 자란 남매는 성적으로 끌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웨스터마크 효과를 검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 이런 예측을 해볼 수 있겠죠. 바로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어렸을 때 같이 살았으면 성관계를 거부하지 않을까?” 운 좋게도 이를 지지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건 이스라엘의 ‘키부츠’입니다. 키부츠는 일종의 협동 농장인데, 공동체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혈연관계가 없는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함께 양육했습니다.
나중에 키부츠에서 자란 사람들의 결혼 사례를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결혼한 약 2,800여 쌍 중 오직 13쌍만이 키부츠 안에서 만난 커플인 거예요. 나머지는 모두 키부츠 외부에서 만난 사람들과 결혼했죠. 더욱 놀라운 점은 그 13쌍도 모두 한 쪽이 6세 이후에 키부츠로 이사를 온 거라는 사실입니다! 혈연관계가 아닌 남녀가 한데 모여 사는 키부츠에서 이렇게 결혼 비율이 적고 그나마도 함께 산 사람들이 아니라니 놀랐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최소한 6세 이전까지 같이 살았던 사람을 근친으로 등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키부츠 전경. 키부츠는 인간 본성을 보여주는 자연 실험장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웨스터마크 효과는 다양한 예측을 내놓습니다. “어렸을 때 떨어져 지낸 형제자매라면 성적으로 끌리지 않을까?”, “현실에서 발생하는 근친상간 사례는 대개 의붓부모-의붓자식의 관계가 아닐까?” 등등.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아보면 “그렇다”라는 사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은 윤리적 문제 때문에 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웨스터마크 효과가 의심할 여지없이 확증된 이론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근친상간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에 생물학적인 영향이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참,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우스갯소리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유모에 손에 자라서 어머니와 같이 있을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어머니를 성적으로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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