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덮어둘 일이지, 뭐 허물이라고…


춥지 않은 대한(大寒). 여전히 미세먼지 자욱. 물 자주 마시고, 손발 수시로 씻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다. 아침 밥상에 오른 속 풀이 매생이 굴떡국. 짭조름 향긋한 ‘바다의 솜사탕’. 바닷물과 햇빛만 먹고 사는 ‘귀때기 푸르스름한’ 하늘하늘 여린 아가씨. 누에 실보다 가느다란 ‘실크 파래’. 너무 오래 끓이면 물처럼 녹아버리는 까다롭고 예민한 바다풀. 전자레인지 사용 절대금물. 아무리 끓여도 ‘시침 뚝 떼며’ 김이 잘 나지 않는 천하의 새침 떼기. 멋모르고 한 숟가락 떴다간 입천장 데기 십상. 가끔 얄미운 사위에게 주는 장모님 히든카드.
 
주말 오랜만에 한집에 모인 가족. 하지만 저마다 데면데면 제 방에 처박혀 딴 세상을 산다. 가족이란 어차피 고슴도치처럼 서로 상처 주고받으며, 보듬고 함께 가야만 하는 것. 오죽하면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배우 기타노 다케시(1947∼) 같은 이는 ‘가족이란 남이 안 보면 어디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을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도 각각 어디로 갈지 모르는 피붙이 형제. 한쪽이 너무 잘나면 다른 한쪽이 상처입고, 둘이 모두 잘 나도 어차피 마음이 서로 안 맞으면 상처 입는다. 김종문(1919∼1981)-김종삼(1921∼1984) 형제와 서정주(1915∼2000)-서정태(1923∼) 형제는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시인형제. 하지만 그들의 삶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다.
 
형 김종문은 물불 안 가리는 독선적이고 고집스러운 무인 스타일. 아우 김종삼은 허무주의적이고 퇴폐적. 자유분방하고 무절제한 삶. 평생 자신의 집 한 채도 못 가져본 채 가난과 고독 속에 살다가 갔다. 생전에 두 사람은 왕래가 거의 없이 살았다. 형은 아우의 무절제한 삶이 싫었고, 아우는 형의 파쇼기질이 못마땅했다. 행여 어쩌다 문인모임에서 형제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한 사람이 슬그머니 자리를 떠버렸다. 문인들은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들 말했다. 한국현대시인협회장(1977∼1980) 등 문단의 ‘시인두목’으로 살았던 형 김종문시인. 영원한 보헤미안에다가, 무산자(無産者)였으며, 생활인으로서 철저하게 무능력자였던 아우 김종삼 시인.
 
문득 “평생 미당 서정주의 아우 되는 아무개로 살아온 게 ‘벽’이었지만, 이젠 그것을 ‘큰 자산’으로 생각한다”는 우하(又下) 서정태시인(95)의 말이 떠오른다. 아우 서정태시인은 예순 넘어 처음으로 형 서정주의 칭찬을 들었다. 미당은 아우의 첫 시집 ‘천치의 노래(1986)’에 서문을 써줬다. ‘네가 쓴 시들이 부디 명이 길어서 나와 너의 육신이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래 살아있는 것이 되기만을 바란다.’
 
그냥 덮어둘 일이지/봄바람에 옷소매 스치듯/지난 잠시의 눈 맞춤/그것도 허물이라고 흉을 보나//대숲이 사운거리고/나뭇잎이 살랑거리며/온갖/새들이 재잘거리네 -<서정태 ‘소문’>​
 
김화성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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