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할퀴고, 돈과 권력이 짓밟았어도...

[이성주의 건강편지]태풍을 이긴 사람들

태풍이 할퀴고, 돈과 권력이 짓밟았어도...

자연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은 얼마나 작은지를 가르쳐 주려는 듯,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덮칩니다. 오전 서귀포 서쪽 바다를 지나 서해를 거쳐 내일 아침 서해안에 상륙, 행정수도 세종을 비롯한 중부지방을 휩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불었던 태풍 가운데 바람이 가장 빨랐던 것은 2003년 ‘매미’였지만 폭우를 가장 많이 뿌린 것은 2002년 ‘루사’였습니다. 루사는 공식적으로 피해도 가장 컸습니다. 사망, 실종 246명에 이재민 8만8000여명에 무려 5조1419억 원의 재산피해를 기록했으니.
    
1959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사라도 루사 못지않은 피해를 안겼습니다. 무려 849명이 숨지거나 실종했고 2533명이 다쳤고, 37만 명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당시 경제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피해의 강도는 루사보다 컸다고 여겨집니다.
    
강원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울진촌의 사연에는 태풍 사라가 똬리를 틀고 있고, 이야기는 루사에까지 이어집니다.
    
사라는 지금은 경북에 속해있는, 강원 울진군도 황폐화시켰습니다. 삶의 터전은 폭우에 휩쓸려갔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주민은 몇 달째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연명하며 몸부림쳤습니다. 굶주린 채 추위와 싸울 때 홍창섭 강원도지사가 솔깃한 제안을 했습니다. 휴전선 부근에 주인 없는 논밭이 널려있고, 이 논밭을 개간할 때까지 강원도와 군(軍)이 각종 장비를 지급하고 곡식을 배급할 테니 이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아이들이 굶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설렜습니다. 울진의 농민들 66세대 364명은 군용 트럭 25대에 나눠 타고 덜커덕 덜커덕 3박4일 동안 강릉, 횡성, 춘천, 화천을 거쳐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 도착했습니다. 한 임신부는 화천의 초등학교에서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잡초벌판이었습니다. 군용 텐트만 덩그러니 쳐 있었습니다. 벌판을 개간할 소도, 쟁기도 없었습니다. 지뢰가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나마 살 길을 찾으려는 순간 4·19혁명이 일어나 도지사가 바뀌면서 이전에 도에서 한 지원 약속은 백짓장이 돼버렸습니다. 군의 식량 배급도 없던 일로 돼 버렸습니다.
    
주민들은 황무지를 맨손으로 개간하면서 굶주림과 싸워야했습니다. 소나무 줄기와 풀뿌리로 연명했고, 운 좋은 날에는 군인으로부터 잔반과 건빵을 얻어먹으며 생기를 보충했습니다. 굶주림에 지쳐 잠드는 밤에는 월북을 권하는 북한의 대남 방송이 울러 퍼졌습니다. 군대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가 없었기에 군인들에게 군기 잡혀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좋은 군인들도 있었지만 어디에서나 째마리들이 있어서, 마을의 어른이 새파란 군인에게 뺨을 맞고 군홧발에 차이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여성들은 군인을 따라 장을 보러가야 했습니다. 아이를 업고 머리에 짐을 인 여성들은 “하나, 둘, 셋, 넷” 구호를 외치며 장으로 갔다가 마을로 되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착한 부대장이 쌀 두가마니를 주며 술을 빚어 군인들에게 팔아서 돈을 마련해 보라고 해 몰래 몰래 장병들에게 술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논밭을 개간할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전쟁터의 탄피가 돈이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읍내에 가면 탄피를 보리쌀로 바꿔줬지만, 검문소 군인들에게 탄피가 발견되면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빼앗겼습니다. 남자는 사타구니까지 뒤지기 때문에 여자들이 나섰습니다. 여성들은 장을 보러갈 때 탄피를 숨겼습니다. 아이가 있는 여성은 탄피를 싼 보자기를 몸에 감고 그 위에 아이를 업었습니다. 아이가 없으면 속옷에 탄피를 숨겼습니다. 아이들이 마을에 되돌아올 때엔 아이들이 군침을 삼키며 맞이했습니다. 겨우 배를 채우며, 돈이 생기면 장비를 구입해 황무지를 개간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일군 땅이었건만, 1980년대 초부터 땅 임자들이 불쑥 불쑥 나타나면서 ‘피 같은 땅’을 빼앗기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목숨 바쳐 개간한 농지 70%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눈물을 흘릴 시간도 없었습니다. 피땀 흘려 마련한 돈으로 땅을 주인에게서 다시 구입하거나 임대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군 소유의 논을 매입하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은 쌀농사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품종 다각화를 꾀했습니다. 우렁이농법으로 생산한 친환경 오대쌀은 전국 명품이 됐고 고품질의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로 수익을 냈습니다. 특히 10여 년 전부터 시작한 ‘피망 사촌’ 파프리카 농사가 대박이 났습니다. 일본에 수출해서 고소득을 올렸습니다.
    
2002년에는 43년 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루사’가 경북 울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자 주민28명이 대표로 고향을 방문, 햅쌀 10㎏ 200포대를 건네며 주민을 위로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들이 일으킨 나라입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 철없는 젊은이들로부터 조롱받는 이들 풀뿌리들이 만든 나라입니다. 이들도 지금 고민에 쌓여 있습니다. 젊은 일손이 없어서 황무지에서 만든 기적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일손도 배정받지 못해서 하우스 농사를 접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타들어 갑니다.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휩쓸고 가면 숱한 피해가 생길 겁니다. 함께 이겨나갈 수 있을 겁니다. 휴전선 아래 주민들이 함께 부둥켜안고 이겨냈듯. 사라도 루사도 이겨냈는데...

    <마현리 마을 입구에 세워진 이주 기념비>

[오늘의 건강] ‘족장 태풍’ 완벽 대비 수칙

어젯밤 제주도에선 벌써 태풍의 위험을 간과한 사람이 실종하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태풍이 무서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대비 역시 아무리 해도 괜찮습니다. 자연은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태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확실한 대비책.
    

[오늘의 건강 상품] 허리 펴지는 원조 상품

미국의 세계적 척추자세과학 전문기업 백조이의 특허 상품이지요? 엉덩이를 감싸는 허리지지대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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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음악

태풍 사라(Sarah)의 이름은 미국태풍합동경보센터 예보관의 부인이나 애인 이름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정했으니까요. 태풍 이름 ‘Sarah’는 ‘Sara’와 같은 유대인 여자 이름입니다. 플리트우드 맥의 ‘Sara’ 준비했습니다. 닐 영의 ‘See the Sky About To Rain’ 이어집니다.

♫ Sara [플리트우드 맥] [듣기]
♫ See the Sky About To Rain [닐 영]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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