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특수학교 반대, 맹목이 부른 악마성

[이성주의 건강편지]강서구 특수학교

장애인 특수학교 반대, 맹목이 부른 악마성

“국립한방병원 건립하여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요즘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아파트 단지에 걸려있는 현수막이지요.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장애 어린이를 위한 특수학교를 지으려고 하자, 이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입니다. 급기야는 5일 열린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자녀의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주민들에게 마음을 바꿔달라고 호소했고, 이 장면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돼 많은 사람이 눈물짓고, 공분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순이 집약된 모습이었고,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惡)의 평범함’이 투영된 현장이었습니다.
 
옛 공진초등학교 땅은 2013년부터 서울시교육청이 특수학교를 짓겠다고 예고한 곳입니다. 그런데 2016년 4월 국회의원 선거 때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새누리당)이 느닷없이 국립한방의료원을 짓겠다고 공약을 내세우며 주민들에게 바람을 넣었습니다. 일부 주민이 주동이 돼 특수학교 설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주민들 사이에 “병원이 들어서면 집값이 오르고,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폭락한다”는 미신이 번졌습니다. 미신이 진실처럼 변해가면서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의 모습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우선 팩트 체크!

 
①집값에 대해=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선다고 집값이 내려간다는 것은 미신입니다. 그렇다면 특수학교의 모범인 밀알학교가 있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일대는 집값이 폭락해야 합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로 특수학교가 들어선다고 집값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한방병원이 들어서면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것도 아무 근거가 없습니다. 경희대한방병원이 있는 동대문구 회기동, 동국대한방병원이 있는 고양시 식사동은 집값이 올랐나요?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립의료원, 국립암센터, 원자력병원 등의 주변 집값이 올랐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②관광객이 외면한다고?=비대위에서는 “강서구가 관광지로 도약하고 있는데 세계적 관광지가 되려는 곳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안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그야말로 ‘제 논에 물대기’ 주장이지요. 해외여행을 한 번이라도 가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선진국의 세계적 관광지에서는 장애인을 가장 우선합니다. 전시관, 박물관 등에서 장애인은 입장에서부터 관람까지 최우대입니다. 디즈니랜드, 디즈니월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세계적 놀이공원에서는 장애 어린이를 맨 앞에 오게 한 뒤에 공연을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 관광 온 상당수 외국인들이 대도시의 거리에서 장애인이 드문 것에 대해 의아해 한다는 사실, 언젠가 건강편지에 쓴 적도 있지요?
 
③한방병원 설립의 현실성에 대해=법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학교용지에 병원을 짓는 것은 토지용도를 변경해야 하는 아주 특별한 상황 외에는 불가능합니다. 지금 한방병원이 모두 덩치를 줄이고 있는 형국이어서 경제적으로도 병원 설립 타당성이 낮습니다. 한방병원이 대한한의사협회 현 집행부의 숙원사업인 듯한데, 환자의 희생을 담보로 병원을 짓겠다면 결국 한의학의 자기부정일 따름입니다. 한방타운이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는 것도 단기간 개발이익을 노리는, 일부의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장애 어린이의 교육은 교육평등권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관련된 것입니다. 어떤 것도 인간의 존엄에 우선할 수 없습니다. 또 힘든 누군가를 도우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렇다면 왜 강서구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자신의 이해관계를 숨긴 정치인과 일부 이권 관계자가 주민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악마를 불러낸 것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특수학교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아의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 많은 사람을 눈물 글썽이게 했지만 장애는 잘못이나 죄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제가 20여 년 전 의학 기자를 하면서부터 수많은 상담을 통해 절감하는 것은 집안이나 친지 중에 장애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장애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걸 부인하는 것은 맹목적 이기심 탓에 한치 앞도, 바로 옆도 못 보는 것일 따름입니다.
 
언젠가 건강편지에서 ‘선진국에서는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장애인을 배려한다’고 썼는데, ‘장애인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배려’는 없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사건이 우리 모두 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빕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좋은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장애인과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서

○장애인을 불구자, 정신지체를 정신박약으로 말하는 등 장애인에게 상처를 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지적장애인에게 나이와 상관없이 반말을 하는 등 장애인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심각한 장애라는 증거이다.
○수화를 몇 단어라도 익힌다. 간단한 인사가 사랑을 전한다. 예를 들어 한 손으로 다른 쪽 팔을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고, 앞으로 두 주먹을 쥔 채 구부리면 “안녕하세요”라는 뜻. 청각장애인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말을 함부로 하는데, 청각장애인 대부분은 욕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
○택시를 잡는데 힘들어하는 장애인이나 엘리베이터, 회전문 등 건물 시설 때문에 쩔쩔 매는 장애인에게 다가가 미소를 짓고 돕는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을 도울 때에는 가급적 무릎을 굽히고 앉아 눈높이를 맞춘다.
○장애인의 부모에게 자녀 중에 또 장애인이 있느냐고 묻는 등 생각 없이 말하지 않는다.
○장애인 차량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지 않는다.
○운전 중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애인을 보면 서행한다.
○어린이가 장애인을 보며 "왜 저래?"라고 물었을 때 "엄마 말 안 들어서 그래"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지 말고 장애에 대해 정확히 설명한다.
○장애인과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고, 자녀도 그렇게 이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는 전국의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신설을 청원하는 서명에 참여하는 것은 어떨까요?
 
<제857호 건강편지 ‘복사뼈가 부러져 비로소 알게 된 것’ 참조>

오늘의 음악

장애를 이긴 성악가의 노래 두 곡 준비했습니다. 안드레아 보첼리가 25세 연하의 사랑스런 동반자 베로니카 베르티와 ‘고엽’을 부릅니다. 토마스 크바스토프가 다니엘 바렌보임의 반주로 슈베르트 ‘겨울여행’ 중 ‘거리의 악사’를 들려줍니다.

♫ 고엽 [안드레아 보첼리] [듣기]
♫ 거리의 악사 [토마스 크바스토프]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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