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벼슬? 우리의 미풍양속일까?

[이성주의 건강편지]어른과 노인

나이가 벼슬? 우리의 미풍양속일까?

지난주 회사의 아침 회의 때 저희 회사 직원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일어난 소동을 전하더군요. 70대 할아버지가 60대 중반의 여성에게 “건방지게 노약자석에 앉아 있느냐”고 호통을 치고 머리를 때려 시끌벅적했다는 겁니다. 지하철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지요. 저도 얼마 전 임산부에게 노약자석에 앉아있다고 호통 치는 노인 모습에 가슴이 끓어오른 적이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노인이 나이를 따지고, “나이가 벼슬”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미풍양속으로 알고 있지만, 무턱대고 나이 몇 살 더 많다고 어른 대접하는 것은 우리 전통문화가 아닙니다.
    
장유유서는 아시다시피 삼강오륜의 하나이지만 《맹자》에서 ‘의(義)’라고 한 경장(敬長)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천(中天) 김충렬 전 고려대 교수는 “장유는 가족윤리인 효제(孝悌)가 가문으로 확장된 것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합니다. 한두 살 많다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은 우리 윤리에도 없는 것입니다. 이를 입증하듯 우리 문화에서는 항렬을 나이보다 우선했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동족마을에서는 나이가 훨씬 많은 노인이 어린 사람이 지나갈 때 고개를 숙이며 “대부님, 진지 드셨습니까?”하고 인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대부(大父)는 할아버지 이상의 항렬인 사람에게 쓰는 존칭이었지요.

    
제 아버지는 성균관대 유림대학원에서 수학한 유가인데, 향교에 갔다가 5, 6세 많은 분에게 형님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가 핀잔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송나라 유자징이 편찬한 《소학》 명륜 편을 인용하면서 나이가 갑절이면 아버지처럼 모시고, 10년이 넘으면 형처럼, 그 이하이면 친구처럼 지내는 게 우리나라 예법이라며 벗으로 서로 벗으로 존중하자고 권했습니다.
    
조선 때 문신 유희춘도 선조에게 “20세 연상이면 어버이처럼, 10세 연상이면 형님으로 대하고, 앞뒤로 10살 차이는 동류로서 예의를 지키며, 10세 아래면 동생뻘로, 20세 연하면 자식뻘로 여겨 아껴주라”는 향약의 규약을 장려할 것을 권합니다.
    
옛날에는 좁쌀영감과 꽁영감들이 나이 타령을 하면 “수구문 차례”라고 면박을 줬습니다. 수구문은 지금의 서울 중구 광희문으로 시신이나 상여가 나가는 문이었습니다.
    
무턱 대고 나이 몇 살 많다고 어른 대접을 요구하는 것은 20세기 중반부터 우리나라에 자리 잡은 독특한 문화현상입니다. 수직적 군대문화와 선후배를 따지는 학교문화가 해체된 가족문화를 덮으면서 생긴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거스 히딩크가 축구대표팀을 맡았을 때 수직적 호칭부터 없애고 이름을 부르게 한 의미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장유유서는 없애야만 할까요?
    
우선, 가문이나 특정 집단에서는 연장자를 존중하고, 그 밖에서는 어른의 지혜를 존경하는 문화는 정착시켜야겠지요. 이때 어른은 경륜이 깊고 폭이 넓은 교양인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분을 가리킬 겁니다. 삶의 깊이와 지성이 자연스러운 주름살과 잘 어울리는 현자입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노인은 사회적 약자로 보호를 해야겠지요. 우리 사회의 성장에 기여했지만 부(富)를 쌓지 못하고, 건강도 약해진 분들을 사회 차원에서 배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복지일 겁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의 노약자석은 이런 차원에서 있을 게고요. 대중교통에서 나이를 내세우며 행패를 부리는 노인을 보면, 나이 차원을 떠나 조용히 신고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고요.
    
어른이 어른으로서 존경받는 사회에서는 나이가 벼슬이 아닙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노인의 권리를 위해서도, 그 역으로도 해당합니다. 생각이 젊고 사려 깊은 어른, 존경스러운 어른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상쾌해지지 않을까요?

어른다운 어른의 10가지 특징

요즘 특히 세대 갈등이 심하지요. 존경스러운 어른이 많아지면 그 갈등의 벽이 낮아지지 않을까요? 어른이 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기도 할 겁니다.
①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진다.
②가볍게 말하지 않는다.
③한쪽에 기울지 않고 균형을 갖춘다.
④어떤 일에 대해 쉽게 판단하지 않고 소문을 쉽게 믿지 않는다.
⑤은은한 감정을 유지하고 화를 참을 줄 안다.
⑥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⑦떼쓰고 징징대지 않으며 양보하는 미덕을 실천한다.
⑧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안다.
⑨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포용할 줄 안다.
⑩매사 행동거지에서 젊은 사람이나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인다.
    
<제1001호 건강편지 ‘어른의 날’ 참조>

오늘의 음악

나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음악 두 곡 준비했습니다. 80대 초반에 한 파티에서 젊은이들과 어울리다가 60대 후반의 노인들을 가리키며 “저 늙은이들이 떠나면 우리끼리 신나게 놀아보자”고 말해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명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지휘하고 NBC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입니다. 둘째 곡은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한 이동통신사의 CF 배경음악입니다.

♫ 운명의 힘 서곡 [토스카니니] [듣기]
♫ Take Five [데이브 브루벡 4중단]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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