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학은 왜 술자리를 떠났을까?
[이성주의 건강편지]술과 낭만
예술과 문학은 왜 술자리를 떠났을까?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1956년 3월 서울 명동의 대폿집 ‘경상도집.’ 가수 나애심이 노래 한 곡을 부르라는 문인들의 청을 받고 “마땅한 노래가 없다”고 빼자, 박인환이 휴지에 쓴 가사이지요. 언론인 이진섭이 단숨에 곡을 붙인 이 노래가 뒷날 수많은 가수가 부른 ‘세월이 가면'입니다.
‘댄디보이’ 박인환은 의사가 될 뻔했던 시인입니다. 1944년 아버지에게 떠밀려 평양의전에 입학했지만 해방이 되자 자퇴하고 서울로 되돌아왔습니다. 서점 ‘마리서사’를 운영했고, 기자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작시한 며칠 뒤인 3월 17일부터 술독에 빠져 살았습니다. 자신의 흠모한 시인 이상의 기일이 4월 17일인데, 착각 때문인지 이날부터 사흘 동안 “이상을 기린다”며 폭음하고는 만취 상태로 귀가했습니다. 그는 “답답해. 생명수를 다오”라고 부르짖은 뒤 가슴을 쥐어뜯으며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59년 전 오늘이었습니다. 문우들은 서른 살에 요절한 그의 주검 옆에 조니워커 술 한 병과 카멜 담배를 함께 묻었지요.
지금 젊은이들은 옛날 선술집, 문인들의 낭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멋지게 취하는 풍류가 사라진 시대, 문학과 예술이 술판에서 멀어진 시대, 우리는 정말 건강해진 걸까요?
애주가의 품격
◯부주(不酒)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9급
<제 261호 건강편지 ‘지훈의 주도론’ 참조>
오늘의 음악
박인환과 이진섭의 ‘세월이 가면’ 듣지 않을 수 없겠죠?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오늘은 조용필의 절창으로 준비했습니다. 코메디닷컴의 ‘엔돌핀발전소’에서는 박인희의 멋진 노래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박인희의 낭송으로 듣겠습니다.
♫ 세월이 가면 [조용필] [듣기]
♫ 목마와 숙녀 [박인희]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