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 취급받았다 숨진 재즈의 아버지
[이성주의 건강편지]거슈인의 황당한 경우
꾀병 취급받았다 숨진 재즈의 아버지
조지 거슈인은 ‘재즈의 아버지’라고도 불릴 만합니다. 재즈를 클래식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으니까요. 거슈인은 황당하게 세상을 떠난 대표적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거슈인은 1937년 오늘 자택의 침대에서 일어나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의사들은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뇌를 절개했지만 종양이 원체 넓게 번져 수술이 불가능했습니다. 거슈인은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슈인은 이전에 숱한 증세를 호소했습니다만, 병원에서 ‘나일론 환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1937년 2월 LA 교향악단과 협연하다가 정신이 멍해져서 몇 소절을 놓치는 경험을 합니다. 두 달 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다가도 비슷한 증세를 겪습니다. 그는 고무 타는 냄새를 느끼면서 ‘정신 줄을 놓는’ 일을 되풀이했습니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 비틀거리며 병원에 실려 가곤 했습니다만, 그때마다 의사는 “정신 탓”이라며 돌려보냈습니다. 거슈인은 머리를 부여잡고 “내 몸에 병이 났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할리우드 생활에 익숙하지 못해 오는 히스테리”라고 진단했습니다.
거슈인은 6월 말에 샤무엘 골드윈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다 쓰러졌습니다. 새 뮤지컬 《골드윈 풍자극》의 9곡 중 5곡을 쓴 상태였습니다. 마지막 노래가 ‘우리 사랑은 여기 남아있네’였지요. 그러나 의사들은 거슈인이 입원한지 1주일 뒤 병을 찾지 못하고 퇴원시켰습니다. 그리고 1주일 뒤 응급상황에서 5시간 수술을 받았지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슈인이 일찍 자신의 병을 알았어도 당시 의술로 치유가 가능했을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요즘이라면 치유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치유가 불가능해도 최소한 덜 고통스럽게 삶을 정리했겠지요. 막대한 유산도 자신의 뜻대로 정리했겠지요.
요즘, 서점에서는 정통의학의 권위를 부정하는 책이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암은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고, 심지어 건강검진을 받을 필요도 없다는 내용의 책이 베스트셀러입니다. 그러나 거슈인이 쓰려졌을 때인 1930년대라면 몰라도 지금은 상식에 맞지 않는 황당한 내용이지요.
수많은 현대 의학의 성과는 이전에 속절없이 병마에 희생돼야 했던 사람들에게 축복입니다. 몸에 이전에 없던 증세가 나타나면 곧바로 병원을 찾고, 이전에 정기검진을 통해 병을 일찍 찾으세요. 스스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물론, 가족에게 눈물 대신 웃음을 선물할 수 있답니다. 이전에 의학의 혜택을 못 봤던 사람을 떠올려보세요. 아직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많지만, 잘만 이용하면, 지금의 의료 시스템도 큰 선물 아닐까요?
거슈인을 괴롭힌 뇌종양의 실체
-두통. 보통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속되며 특히 한밤중이나 잠에게 깨어난 아침에 심하다. 운동을 하거나 자세를 바꿀 때 심해지기도 한다.
오늘의 음악
오늘은 조지 거슈인의 음악 세 곡을 준비했습니다. 첫 곡은 마지막으로 작곡한 ‘우리 사랑 여기 남아있네’를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필하모닉과 개리 그래프만의 피아노연주로 듣겠습니다. 둘째 곡은 구스타보 두마멜이 지휘하고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파리의 미국인’입니다. 셋째 곡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고 콜롬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Rhapsody in Blue’입니다.
♫ 우리 사랑 여기 남아있네 [개리 그래프만] [듣기]
♫ 파리의 미국인 [구스타보 두마멜] [듣기]
♫ Rhapsody in Blue [레너드 번스타인]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