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문화를 지킨 주인공을 기억하지 않는 나라
[이성주의 건강편지]멋진 문화인 한창기
글과 문화를 지킨 주인공을 기억하지 않는 나라
한창기는 영어를 썩 잘 했습니다. 후버트 험프리 전 미국 부통령이 “내가 만난 비영어권 사람 중에서 가장 영어를 잘 한다”고 평할 정도였습니다.
중고 때부터 라디오로 ‘미국의 소리’를 들으며 독학했고, 가난 때문에 과외교사를 하면서 참고서를 통째로 외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창기는 2년 동안 미국 시카고의 브리태니커 본사에 편지를 보내서 백과사전을 보급하는 권리를 받아냈고, 한국브래태니커사가 탄생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70년 이 회사 사장이 되고나서 이듬해 “나이가 몇 살이건, 고향이 어디건, 어느 학교를 나왔건, 지난날 무슨 일을 했건, 스스로 똑똑하다 생각하는 사람, 능력이 있는데 아무도 안 알아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소개서를 써 보내라”고 사원을 모집합니다. 한창기는 출판계에 방문판매를 도입했고 윤석금(웅진), 김낙천(고려원) 등 숱한 영업의 대가들을 키워냅니다.
‘천재 한창기’는 브리태니커의 전설에 머물 사람이 아니었지요. 그는 본사에 ‘미국상품만 팔면 한국에서 반미운동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설득해서 한글 잡지 ‘배움나무’를 출간합니다. 이 책은 뒤이은 책의 준비 작업이었지요. 한창기는 5년 동안 연구를 거듭해서 1976년 3월 우리 출판계의 기념비적인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출간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최초의 가로쓰기 한글전용 잡지로 글꼴, 편집디자인 등의 개념을 처음 도입했습니다.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국어를 쉬운 토박이말로 바꿨으며 일본말이나 서양말 구조로 오염된 문장을 우리말 짜임새로 바꾸려고 노력해서 문화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큰 성공은 치밀함에서 온다지요? 대부분의 천재들이 그렇듯, 한창기 역시 세밀한 데 집착했습니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 책에서 마침표가 1㎜ 어긋나게 찍혔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고, 오자가 나면 직원들을 향해 “다 총살시키겠다”고 노발대발했습니다. 한창기는 1980년 8월 신군부에 의해 이 훌륭한 책이 강제 폐간되자 ‘샘이 깊은 물’을 만들어 ‘우리 것’을 퍼뜨렸습니다.
한창기는 책으로 번 돈으로 뜻 깊은 문화 사업을 펼칩니다. “일을 한 번 제대로 하려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며 판소리 전집과 민요 음반들을 만들고, 놋그릇 반상기와 전통 옹기를 되살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는 전통문화의 복원과 보전에 온힘을 쏟았지만 개량한복은 얼치기라면서 끔찍이 싫어했습니다.
출판계와 미술, 음악계에서 한창기는 큰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나무의 자취를 찾기조차 힘듭니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 가면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에서 한창기 이름 석 자와 자취를 만날 수 있지만, 대중에게는 무명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그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우리말은 파괴되고, 우리 전통문화는 경시되고 있지요. 공장에서 찍은 듯한, 국적 불명의 말초적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세상, 진짜배기를 열렬히 사랑했던 한창기가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심장 수술 분야 삼성서울병원 이영탁 교수
코메디닷컴이 전국 10개 대학병원의 심장내과 및 흉부외과 교수 47명에게 “가족이 아프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사”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기본으로 하고, 코메디닷컴 홈페이지에서 전문가들이 추천한 점수와 환자들이 평가한 체험점수를 보태서 집계한 결과입니다.
이 교수는 2007~2007년 방영된 MBC 드라마 ‘뉴하트’에서 최강국(조재현 분)의 실제 모델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음악
오늘은 한창기 선생이 평생 보전하려고 애쓴 판소리 가운데 한 대목을 준비했습니다. 안숙선 명인이 지난해 대보름에 부른 ‘수궁가’에서 토끼 잡아들이는 대목 들어 보시겠습니다. 올해 국내에서 공연하는 음악가의 작품 두 곡 이어집니다. 2월말 방한하는 예프게니 키신이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과 협연하는 그리그 피아노협주곡 1번과 3월 연세대 백양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레이첼 야마가타의 ‘Be Be Your Love’입니다.
♫ 수궁가 [안숙선] [듣기]
♫ 그리그 피아노협 1악장 [예프게니 키신] [듣기]
♫ Be Be Your Love [레이첼 야마가타]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