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시련을 이긴 대한민국 영웅의 손
[이성주의 건강편지]장훈의 오른손
차별과 시련을 이긴 대한민국 영웅의 손
1959년 오늘(4월 11일) 일본 도쿄 고마자와 구장. 도에이 플라이스(지금의 니혼햄)의 3회 말 공격 때 상고를 갓 졸업한 좌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전날 3구만에 삼진을 당하고 상대팀 타자가 친 평범한 공을 ‘만세’ 자세로 놓쳐 곧바로 교체된 ‘굴욕의 애송이’ 장훈이었습니다.
상대팀 한큐의 투수는 전해 14승4패의 기록을 세운 에이스 아키모토 유사쿠. 장훈은 유사쿠의 강속구를 힘껏 때려 좌중간 2루타를 날렸습니다. 다음 타석에서는 바뀐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쳤습니다. 이것은 신호탄에 불과했습니다. 장훈은 그 해 라이벌 왕정치를 누르고 신인왕을 차지했고 1982년 41세로 은퇴할 때까지 통산 3085안타에 7차례 수위타자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있지만, 장훈은 오른손 불구와 민족차별을 이기고 힘든 시절 한국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영웅입니다.
그는 4살 때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구워먹던 중 갑자기 후진한 트럭에 부딪혀 오른손이 드럼통에 빠지면서 화상을 입었습니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녹아서 붙어버렸지만 장애를 이기고 왼손, 왼팔로 일본 야구사에 기적을 썼습니다.
장훈은 고교 때 투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어깨가 고장 나 눈물을 흘려야했습니다. 그러나 운명에 무릅꿇는 대신 기회로 삼았습니다. 매일 밤늦게까지 야구배트를 잡고 타이어를 두드리고 두드렸습니다. 피가 나면 붕대를 감고 두드렸습니다. 붕대가 피로 흥건해지면 자전거 튜브를 감고 때리는 그야말로 ‘피나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훈은 일본 귀화 요청을 거절하고 줄곧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삽니다. 1982년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아무 대가 없이 재일교포 야구인들을 찾아다니며 한국행을 권유했지요. 그가 보낸 장명부, 주동식, 김일융 등은 한국 야구의 수준을 단순간예 올리는데 기여했고요.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자화자찬의 사이비 영웅은 많이 소개되지만 장훈은 찾을 수가 없군요. 그는 지난해 우리나라 프로야구 30돌 기념식에 초대받지도 못했습니다. 교과서에서 장훈을 소개하지 못한다면, 그의 오른손이라도 소개하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에 밥을 먹고 물수제비를 하던 손. 그러나 불덩이에 녹아내린 손. 야구를 하기 위해 왼손에 주 역할을 양보해야만 했던 손. ‘최고의 좌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른팔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코치의 이야기를 듣고 손바닥이 벗겨지고 피가 나도록 배트를 쥔 채 타이어를 두드리던 그 오른손, 온갖 차별과 견제를 이기고 기적을 만든 영웅의 오른손을!
장훈 스토리 동영상
KBS에서 장훈의 감동 스토리를 방영했더군요. 백인천의 목격담도 감동을 더하는군요. 삶에 힘을 주는 동영상입니다. 시련을 이기는 것은 결국 노력밖에 없는가 봅니다.
장훈 이야기 동영상으로 보기
오늘의 음악
1902년 오늘은 엔리코 카루소가 처음으로 음반을 녹음한 날이라고 합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과 나폴리 민요 ‘산타루치아’를 준비했습니다. 어제 4월의 눈이 왔죠? 루시드폴이 작사 작곡한 ‘봄눈’을 박지윤의 목소리로 듣겠습니다.
♫ 남몰래 흘리는 눈물 [엔리코 카루소] [듣기]
♫ 산타 루치아 [엔리코 카루소] [듣기]
♫ 봄눈 [박지윤]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