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폐결혁으로 숨지지 않고 해방을 맞았다면

[이성주의 건강편지]날개 꺾인 천재

이상이 폐결혁으로 숨지지 않고 해방을 맞았다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회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1910년 오늘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 《날개》를 지은 천재 시인, 소설가 이상(李箱)이 서울 사직동에서 태어난 날입니다. 시 《오감도》도 감탄을 토해내게 만들지만, 《날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로 시작하고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로 마무리하는 그 구성미에 소름이 돋습니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 하필 나라가 빼앗기던 해 태어났습니다. 아직까지 생떼와 억지를 부리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지배를 받았던 시절, ‘식민지의 천재’는 밝을 수가 없었던 가 봅니다. 그의 작품은 잿빛 바탕에서 현대인의 소외를 주로 다루지요. 일본 유학 중에 ‘불령선인(不逞鮮人. 사상이 의심스러운 조선인)’으로 검거돼 한 달 옥살이를 하다가 건강이 악화돼 풀려나서 도쿄대학부속병원에서 숨집니다.

이상의 소설 《날개》는 아시다시피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무력한 조선 지식인의 좌절감이 깔려 있는…. 첫 문단에 담배를 피우면 회충 앓는 배에 좋다는 당시 상식이 은근슬쩍 반영돼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상은 폐결핵 환자입니다. 니코틴과 타르 연기가 폐결핵을 악화시켰겠지요? 담배가 27세에 짧은 삶을 마감하도록 불을 태웠겠지요?

천재가 건강에 신경을 쓰고 담배는 멀리 했다면, 그래서 하늘이 준 수명만 채웠다면 ‘광복 대한민국’의 문학지도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천재 문학가가 응아~하고 태어난 날에 말입니다.

결핵에 대한 상식 6가지

결핵은 현재진행형의 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해 3만5000명에게서 발병하고, 2300명 정도를 희생시킨다. 사회적으로 8000억원의 피해를 가져온다. 요즘에는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한 결핵이 늘고 있다. 결핵은 조기진단과 철저한 투약이 최선의 방법.

①BCG 예방접종을 받아도 결핵에 걸린다. 그러나 예방접종을 받으면 감염될 위험이 줄어들고 어린이가 결핵에 걸렸을 때 치명적인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②한 번 걸렸다 완치돼도 또 걸릴 수 있다. 면역력이 생겨 안 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늘 경계해야 한다.
③모든 결핵 환자가 주변에 전염시키는 것은 아니다. 건강검진 시 아무런 증상 없이 X-레이에서 결핵이 발견됐다면 전염력이 거의 없다. 그러나 증세가 있다면 전염 가능성이 있다. 특히 환자가 약을 복용한지 2~3주까지는 전염력이 강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약 복용 2~3주 뒤부터는 전염성이 없어진다. 이때엔 성생활을 해도 전염되지 않는다.
④결핵은 식기나 수건 등으로 쉽게 전염되지 않는다. 대부분 폐결핵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가래에 있는 균이 주변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 전염된다.
⑤결핵 감염이 의심될 때 X-레이 촬영 결과 이상이 없어도 안심하긴 이르다. 이후 발병할 수 있다. 결핵 감염이 의심되면 2년까지 6개월마다 X-레이를 찍어 확인하는 것이 좋다.
⑥결핵은 폐에만 침범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결핵은 뇌, 척추, 관절 등 온몸에 발병한다.

<제238호 건강편지 ‘결핵의 날’ 참조>

오늘의 음악

오늘은 역시 결핵으로 숨진 쇼팽의 명곡 세 곡을 준비했습니다. 에프게니 키신의 내한공연 중 ‘강아지 왈츠(미뉴에트 왈츠)’, 윤디 리의 ‘야상곡 Op9 No2’, 크리스티앙 짐머만의 ‘발라드 1번’이 이어집니다. 덤으로 지난호에 소개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신나는 노래 'Burning Love' 추가합니다.

♫ 강아지 왈츠 [에프게니 키신] [듣기]
♫ 야상곡 9-2 [윤디 리] [듣기]
♫ 발라드 1번 [크리스티앙 짐머만] [듣기]
♫ Burning Love [엘비스 프레슬리]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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