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이끈 백작 출신의 자칭 좌파 지식인
[이성주의 건강편지]폭포같은 철학자
20세기를 이끈 백작 출신의 자칭 좌파 지식인
아무리 얼굴이 아름다우면 무슨 소용입니까?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모른다면.
초호화 아파트에 살면 뭐합니까? 그 공간에 양서(良書) 한 권 없고, 명반(明盤) 한 장 없다면.
옷이 수 백 만원 명품이면 무슨 소용입니까? 주인의 얼굴에서 품위라곤 찾아볼 수 없다면 말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니면 뭐합니까?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그 돈을 좋은 곳에 사용할 넉넉한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지식이 많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누군가를 헐뜯는 서푼짜리 무기로만 사용한다면 말입니다.
정신의 아름다움이 경시되고 속물의 허울이 덮고 있는 세상, 정신이 빛나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1970년 오늘 9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버트란트 러셀 경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할아버지가 두 번이나 총리를 지낸 귀족 가문 출신임에도 백작의 지위에 머물지 않고 진실을 향해 자신을 던진 지식인이었습니다. 자신을 무정부주의자, 좌파, 회의론자 등으로 불렀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반대했지만 소련 전체주의에도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했습니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러셀은 시인 김수영의 시 ‘폭포’에 어울리는 지식인이지요. 수학, 분석철학, 인식론, 정치학 등 온갖 분야에서 숱한 저술을 통해 인류사에 폭넓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공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요. 여성해방운동, 반핵평화운동 등에서도 큰 활약을 했습니다.
경험에 따라 참을 증명하는 귀납법의 오류를 지적한 ‘러셀의 칠면조’는 유명하지요. 고 신일철 고려대 교수는 인식론 강의에서 이렇게 한국식으로 풀이했지요.
“똑똑한 암탉이 있었어요. 매일 저녁에 주인이 ‘구구’하면 모이를 주자 ‘구구=식사시간’이라는 법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득도’해서 주인의 ‘구구’소리를 듣고 나간 날이 제삿날이었습니다. 장모가 사위 보신용으로 암탉을 잡은 것이죠.”
러셀은 이처럼 지식의 한계를 간파하고 평생 진리를 추구했지요.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성에 어긋나면 반대했지요. 1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의 제국주의의 반대해서 반전운동을 펼쳤다가 대학 강사직에서 쫓겨나고 6개월 옥고를 치렀습니다.
러셀은 ‘자서전’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과연 이렇게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사랑과 지식은 가능한 범위에서 나를 천국으로 이끌지만, 연민은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늘 통곡의 메아리가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굶주리는 아이들, 고문의 희생자들, 자녀들에게 짐이 된 오갈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 가난, 고통의 세계가 인류의 꿈을 비웃고 있지 않은가. 고통을 누그러뜨리길 갈망하지만 그렇지 못해 나 역시 고통스럽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내 삶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또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 것이다.”
러셀 밑줄 긋기
○훌륭한 삶은 사랑에 고무되고 지식에 인도되는 삶이다.
오늘의 음악
오늘은 재즈 두 곡과 팝 한 곡, 고전음악 한 곡을 준비했습니다. 재즈곡은 데이브 브루벡의 명곡 ‘Take Five’와 ‘Kathy's Waltz’를 준비했습니다. 1977년 오늘 태어난 콜롬비아의 슈퍼스타 샤키라의 ‘Hips Don't Lie’가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타이스의 명상을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 Take Five [데이브 브루벡] [듣기]
♫ Kathy's Waltz [데이브 브루벡] [듣기]
♫ Hips Don't Lie [샤키라] [듣기]
♫ 타이스의 명상곡 [크라이슬러]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