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유도하는 죽음의 문화에서 벗어나야

[이성주의 건강편지]자살 부추기는 사회

극단적 선택 유도하는 죽음의 문화에서 벗어나야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이 걱정입니다. 오늘은 한 아나운서의 자살을 둘러싼 여러 현상들을 보면서 욕을 얻어먹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각오로 편지를 씁니다.  

여러 유명인사의 자살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언론과 네티즌이 처음에는 한 사람을 막다른 골목으로 몹니다. 장기판의 외통수 신세가 된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그러면 언론과 네티즌은 그 사람에게는 입을 다물고 대척점에 있는 사람을 희생자로 삼아 들개처럼 달려듭니다.

사람이 죽으면 용서가 되고 그 사람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은 죄인이 되는 문화,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누구보다 가슴 아픈 또 하나의 피해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것,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망자(亡子)에게 무조건에 가깝게 관대한 문화와 산 사람에게는 함부로 막말을 하는 문화, 혹시 이런 문화가 대한민국을 ‘자살공화국’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히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문화라면 자살충동에 취약한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자살을 하면 많은 것이 용서가 되고, 때에 따라서는 원하는 것을 이룰 수까지 있으니까요.

언론의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제 ‘시골의사’ 박경철 씨와 한 사진기자가 트위터에서 논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박 씨가 ‘조사를 마친 시신’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보고 기자들을 원색공격하자, 한 사진기자가 “기자들은 마음이 아픈 소식도 보도해야 할 천직 의무가 있다”고 맞받아쳤지요. 두 사람이 서로 사과하면서 논쟁을 끝냈는데, 그럴 사안이 아닙니다.

언론은 모든 사실을 보도해야할 권리도, 의무도 없습니다. 특히 자살보도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2004년 7월 한국기자협회는 ‘자살보도권고기준’을 채택, 자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동기를 함부로 단정하는 것과 같은 선정적 보도를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보도가 모방 자살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습니다. 한국 언론은 금세 잊어버리고 추측성, 선정적 보도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까마귀 언론’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살은 우울증 환자에게서 많이 일어납니다. 이번에 극단적 선택을 한 아나운서도 우울증 환자였습니다. 의사의 입원 권고를 거부하고 집으로 갔다가 벼랑 끝 선택을 했지요. 언론과 네티즌의 공격은 자살의 촉매가 된 것이고요.

우울증 환자의 주위 사람은 자살 예방 수칙을 철저히 인지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또 자살한 사람을 합리화하고 신원(伸寃)하는 문화를 없애야 합니다. 자살에 대해 흥미 위주로 보도하는 언론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또 남을 함부로 욕하는 것이 얼마나 천박한 짓인지 인식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생명의 소중한 가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삶은 절대 컴퓨터처럼 리셋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삶에서 늘 힘들 때가 생기며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진정 훌륭한 삶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살충동을 극복한 사람을 존경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링컨은 자살의 유혹을 극복한 대표적인 위인이지요. 그는 자살충동에 무릎을 꿇지 않으려고 호주머니에 칼이나 총을 넣고 다니지 않았고 나무에 목을 매고 싶은 충동을 피하려고 혼자 숲속을 산책하는 것도 피했습니다. 그는 큰 뜻과 신앙심, 유머로 우울증을 극복했습니다. 많은 우울증 환자는 순간의 충동을 극복하면 충분히 잘 살 수가 있습니다.

자살,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뜻을 모아 무엇인가를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자살 예방을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

‘미국 응급의학협회(American College of Emergency Physicians)’의 린다 로렌스 박사팀이 제시한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11가지 징후’와 ‘타인의 자살충동이 느껴질 때 지켜야할 6가지 수칙’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어야겠습니다.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11가지 징후

①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슬퍼질 때

②삶의 의욕이 사라져 무엇을 해도 기쁨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때

③부쩍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때

④자살에 쓰이는 약에 대한 정보를 궁금해 할 때

⑤어떤 날은 기분이 매우 좋고 어떤 날은 심하게 우울해지는 등 감정의 기복이 클 때

⑥사소한 복수에 연연하는 등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

⑦식습관, 수면습관, 표정, 행동 등이 이전과는 달라졌을 때

⑧운전을 험악하게 하거나 불법적인 약을 복용하는 등 위험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할 때

⑨갑자기 침착해질 때(자살을 결정하면 차분해진다)

⑩학교생활, 인간관계, 직장생활, 이혼, 재정적 문제 등 삶의 위기를 느낄 때

⑪자살과 관련된 책에 흥미를 느낄 때

타인의 자살충동이 느껴질 때 지킬 6가지 수칙

①혼자 두지 마라. 주변에 총, 칼, 약처럼 자살에 사용될 수 있는 물건들이 방치돼 있을 땐 더욱 위험하다.

②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라. 911(한국은 국번 없이 119)이나, 지역응급센터, 의사, 경찰,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한다.

③도움을 요청하고 기다리는 동안엔 차분하게 대화를 하라. 시선을 마주하고 손을 잡고 대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④자살방법 등의 자살계획을 면밀하게 세워뒀는지 대화를 통해 알아둬라.

⑤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라.

⑥자살을 시도했을 땐, 즉시 앰뷸런스를 부르고 응급처치를 시도한다.

<제 398호 건강편지 ‘대통령의 우울’ 참조>

오늘의 음악

대한민국에 자살이 만연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미움의 마음이 퍼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살한 사람에겐 자신에 대한 미움이 깔려 있다고도 할 수가 있겠고요. 사랑이 번진 사회가 되기를 빕니다. 오늘도 사랑 노래 세 곡을 준비했습니다. 우선 선천적 장애를 극복한 토마스 크바스토프가 부르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 제1곡 ‘아름다운 5월에’에서 제6곡 ‘신성한 라인의 물줄기에’까지 준비했습니다.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사람이 부르는 사랑 노래입니다.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와 맹인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의 ‘Once There was a Love’가 이어집니다.

♫ 시인의 사랑 1~6 [토마스 크바스토프] [듣기]
♫ A Lover's Concerto [사라 본] [듣기]
♫ Once There was a Love [호세 펠리치아노]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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