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살이의 역경이 추사체와 세한도를 낳았다
[이성주의 건강편지]추사의 세한도
귀양살이의 역경이 추사체와 세한도를 낳았다
1786년 오늘 우리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추사(秋史) 김정희가 태어났습니다. 추사의 호는 완당(阮堂), 예당(禮堂), 노과(老果) 등 180가지가 넘습니다. 어른이 돼서 지은 이름, 즉 자(字)는 원춘(元春)이고요. 추사는 조선 후기의 지식인 신관호와 흥선 대원군 이하응, 소치 허련 등의 스승으로 실사구시의 학문이 번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추사는 초정(楚亭) 박제가의 제자입니다. 초정은 추사가 6살 때 집 문에 입춘첩을 붙이는 것을 보고 “학예로 세상에 이름을 드날릴 것”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추사는 15살 때 초정을 사사(師事)합니다. 추사는 생원시에 일등합격하고 김노경을 따라 북경에 가서 고증학(考證學)을 체험하고 열렬한 전파자가 됩니다. 31세 때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순수비를 발견하는 등 금석학의 대가로서도 여러 업적을 남깁니다.
그러나 55세 때 당파 싸움에 휘말려 아무런 죄도 없이 제주도로 유배를 갑니다. 윤상도라는 선비가 10년 전에 탐관오리를 고발하다 임금의 미움을 받아 죽었는데, 이 사건에 선친이 연루됐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 때문에 귀양을 가니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한창 잘 나가던 관료였지만 세도 가문의 세력 싸움에 희생된 것이죠.
추사는 귀양길에 전남 해남의 대둔사(대흥사)를 들러 평생의 벗 초의선사를 만납니다. 추사는 그때 ‘대웅보전’ 현판을 보고 “조선의 글씨를 망친 이광사의 글씨를 붙여놓다니…”하고 혀를 차면서 현판을 떼게 한 뒤 자신이 글씨를 써줍니다. 그러나 8년 만에 귀양살이를 마치고 다시 대둔사에 들렀을 때에는 “내가 잘못 봤다. 그 현판을 다시 붙여놓게”라고 했습니다. 이광사는 동국진체(東國眞體)의 대가로 중국에서 벗어난 우리나라의 독특한 서체를 정립한 사람이었습니다.
추사는 제주 유배 생활을 하면서 타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글씨를 쓰고 또 쓰면서 새로운 안목이 생겼고 동국진체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눈이 생긴 것입니다. 추사는 유배지에서 두 번째 부인 예안 이 씨를 잃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했습니다.
추사의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도 귀양생활 중에 나옵니다. 추사는 사랑하는 제자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그려주었고 제자는 중국에 가서 명사 16명에게 이 그림에 대한 찬사를 받아오지요. 가끔씩 힘 들 때에 세한도의 글귀를 되새겨보십시오.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는 그 의미를.
간편한 냉수마찰
①뜨거운 물에 발을 1, 2분 담근다.
☞알몸 냉수마찰을 못한다면 세수할 때 뒷목까지 돌려가면서 씻는 것이 좋다. 목뒤엔 각종 경혈이 있어 이를 마찰하면 면역기능이 강화된다.
☞냉수마찰은 몸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열이 있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는 피한다. 또 냉수마찰 때 몸이 떨리거나 살갗이 심하게 달아오르면 멈추어야 한다. 고혈압 환자는 중풍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
오늘의 음악
1899년 오늘 세상을 떠난 요한 슈트라우스의 ‘빈 숲 속의 이야기’를 먼저 준비했습니다. 로버트 스톨츠가 지휘하고 비엔나 필이 연주합니다. 이어서 1875년 눈을 감은 조르조 비제의 대표작 ‘카르멘’ 중 ‘하바네라’를 이탈리아의 전설 마리아 카라스와 루마니아의 안젤라 게오르규의 음성으로 듣겠습니다. 마리아 카라스의 곡과 안젤라 게오르규의 곡은 전혀 다른 느낌을 다가옵니다.
♫ 빈 숲 속의 이야기 [비엔나 필] [듣기]
♫ 카르멘 서곡과 하바네라 [마리아 카라스] [듣기]
♫ 하바네라 [안젤라 게오르규]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