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아름다움으로 녹인 여인

[이성주의 건강편지]Lady Sings the Blues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녹인 여인

남부의 나무엔 이상한 열매가 열려 있네.

잎에도 피가, 뿌리에도 피가 나네.

남풍이 불면 검은 몸들이 흔들거리네.

포플러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과일….


남부 백인들이 흑인을 린치하고 나무에 목매달아 죽이는 현실을 고발한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양식 있는 백인은 분개했고 대부분의 흑인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노래는 릴리언 스미스가 소설로 발표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에는 1915년 오늘(4월 7일) 볼티모어의 슬럼에서 태어난 빌리 할리데이의 울분과 슬픔이 녹아 있습니다. 수많은 미국의 재즈 가수가 인종차별의 굴레 속에서 불우한 삶을 살았지만, 빌리처럼 기구한 삶을 산 가수도 드뭅니다.


그녀는 13세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고아 아닌 고아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10세 때 백인 남성에게 성폭행당하고 신고했다가 오히려 감옥에 갇혀 2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전축이 있는 창녀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흑인남성에게 성폭행당하고, 그 길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가수가 된 사연도 한편의 영화 같습니다. 그녀는 밀린 방세를 못내 쫓겨나기 전 무작정 거리를 헤매다가 재즈 홀의 간판을 보고 들어갑니다. 댄서라고 속이고 취직하려하지만 오디션을 거쳐야했고 당연히 들통이 났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자 피아니스트가 “노래라도 한 곡 불러보렴”하고 기회를 줍니다. 그녀가 《혼자서 여행을》(Trav'lin' All Alone)이란 노래를 부르자 홀 전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고 합니다.


그녀는 재즈 홀에서 팁을 받기 위해 허리를 숙이지 않는 등 더이상 값싸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해 <Lady>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 연인 레스터 영이 이에 더해 <레이디데이>라는 별칭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녀는 이 무렵부터 머리에 치자꽃 장식을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빌리는 백인밴드와 노래를 불렀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짐승 취급을 받았습니다. 순회공연 도중 식당에서 혼자 쫓겨나가는 것은 비일비재했고, 호텔에서 문전박대를 하는 탓에 혼자서 잘 곳을 찾아 헤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결혼생활에도 번번히 실패해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첫 번째 남편이 심어준 마약중독자란 딱지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마약을 이기기 위해 요양원을 찾았지만,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됐고 말년에는 마약을 이기기 위해 알코올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녀가 간경변증과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는 경찰에 의해 마약 소지 심증만으로 체포되기도 합니다. 그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마약 욕구를 줄이는 진정제만을 주사 받다가 숨졌을 때 병원의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의 차트에는 엘리노어 페이건이라는 본명 밑에 “병명: 마약중독 말기, 치료방법: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빌리는 온 세상의 슬픔을 짊어지고 떠나갔지만, 그의 음악은 남아있습니다.

그녀의 삶과 노래에 녹아있을 울분과 슬픔을 생각하면 저는 참 행복 만으로 채워진 삶을 살고 있구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불행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행복이 아닐까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에세이'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젊었을 때는 꽤나 빌리 할리데이를 들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멋진 가수인지를 정말 알게 된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다. 그러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빌리 할리데이의 슬픈 노래들

 


















오늘은 빌리 할리데이의 노래를 3곡 준비했습니다.
첫째 곡은 <Lady Sings the Blues>. 마치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이유를 들려주는 듯하죠. 둘째 곡은 재즈의 맛이 물씬 풍기는 <Fine and Mellow>입니다. 첫 번째 연인 레스터 영의 테너색소폰 연주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셋째 곡은 <I'm a Fool to Want you>. 우리나라에서 특히 사랑을 받은 노래이죠. 폴 뉴먼, 줄리 앤드루스가 주연한 영화 <찢어진 커튼>이 배경화면으로 나옵니다.

<코메디닷컴>의  <엔돌핀 발전소>에서는 아버지가 폐렴에 걸렸다가 병원에서 문전박대당하고 허망하게 숨진 뒤 백인들의 흑인 린치를 고발한 노래 <Strange Fruit>와  <Good Morning Heartache> 등의 명곡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Lady Sings the Blues
 http://test2.kormedi.com/cmnt/scrap/View.aspx?seq=10766&page=1&searchField=Subject&searchKeyword=

▶Fine and Mellow

http://test2.kormedi.com/cmnt/Scrap/View.aspx?seq=10768&page=1&searchField=Subject&searchKeyword=

▶I'm a Fool to Want You

http://test2.kormedi.com/cmnt/Scrap/View.aspx?seq=10770&page=1&searchField=Subject&searchKeyword=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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