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설은 유난히 춥다...의-정 갈등에 ‘감정 노동’의 끝은?

[김용의 헬스앤]

간호사들은 코로나19 유행 때 최일선에서 감염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알려지면서 '코로나 영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최근 취업난을 겪고 있다. [사진=뉴스1]

“아직도 취직 못했어? 친구 딸은 첫 월급받고 선물까지 했다는데...”

설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친지 대화에서 금기어 중 하나가 ‘취업’ 얘기다. 밥상머리에서 “취직은 했니?” 물었다간 분위기만 썰렁해진다. 몇 년째 취직을 못한 자녀, 조카들을 의식해 민감한 주제는 일부러 피한다. 스트레스는 본인들이 더 받고 있는데 괜한 생채기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 세대의 취업난은 간호대생도 예외가 아니다. 간호사는 그동안 다른 직종에 비해 비교적 취업이 잘 된 편이었지만 최근 의사-정부 갈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공의들의 잇단 사직으로 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의 환자 수가 크게 줄면서 신규 간호사 채용을 꺼리는 의료기관들이 늘고 있다. 덩달아 간호대생 취업률도 급감하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제대로 터졌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취업 성공해도 무기한 발령 연기...자부심 깨졌다

힘겹게 대학병원 취업에 성공한 간호사들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정식 발령을 받지 못한 채 입사 대기 기간이 1년 이상 길어지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아예 간호사 채용공고문에 최종합격발표일로부터 2~3년까지 발령 대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는 병원도 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병원 경영 상황에 따라 정식 발령을 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일부 병원은 경영난을 빌미로 명예 퇴직, 무급 휴직을 실시하기도 했다. 주로 간호사, 행정직이 대상이다. 대학병원 직원은 '안정된 직장인'의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크게 옅어졌다. 언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지 불안하다. 의-정 갈등의 여파는 지역이 더 심각하다. 일부 지방 대학병원 간호사들은 임금체불로 생활고마저 겪었다.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신규채용마저 중단하고 있어 업무량은 더 늘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니 피로감이 가중되고 있다.

간호대 올해 취업률 34% vs 2023년 81.9%...왜?

보건복지부-한국간호대학장협의회가 지난달 19개 간호대학을 대상으로 '간호대학 졸업생 취업현황'을 조사한 결과, 올해 졸업하는 간호대 졸업생의 취업률은 34%에 불과했다. 2023년 81.9%에 비해 절반 이상 떨어진 수치다. 취업 걱정은 안 하던 간호대생들이 절망감은 크다. 많은 대형병원들이 당분간 모집 계획조차 없어 예비 간호사들이 고용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의-정 사태가 일단락되더라도 상당수의 상급종합병원들이 올해는 간호사 채용이 어렵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채용·교육비를 아끼고 기존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경영난 해소에 주력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 후유증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의사, 간호사, 행정직 간의 신뢰와 팀워크가 예전 같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정 사태 초기 일부 병원 경영진이 간호사, 행정직에 무급 휴직을 통보하자 “왜 우리가 애꿎은 피해를 봐야 하는가?” 불만이 팽배했다. 지금은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신뢰 관계에 금이 간 것은 병원 관계자들도 인정한다.

의사, 간호사, 행정직 간의 간극...신뢰감 회복도 큰 과제

그동안 전공의들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희생을 토대로 병원이 수익을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간호사-행정직은 의-정 사태 동안 임금 삭감은 물론 신분상의 불이익도 감내해야 했다. 안정된 직장인에서 주변이 걱정하는 고용불안의 대상이 된 것은 뼈아프다. 의-정 사태가 마무리되면 상급종합병원들의 경영전략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병원 수익구조에서 정부 지원 몫이 커지고 전공의 근무 체계-임금 등에서 많은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의사, 간호사, 행정직 간의 신뢰감을 회복하는 것도 큰 과제다.

최일선의 '감정 노동자‘...내년 설은 몸과 마음이 더욱 따뜻해지길

간호대학생들은 설 명절에 만난 친지들의 ‘취업 걱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취업이 잘 되는 직종이라 간호대를 선택했는데, 알바로 생활비를 벌다니... 간호사들은 코로나19 유행 때 최일선에서 감염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알려지면서 '코로나 영웅'으로 불리기도 했다. 환자가 어려움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바로 간호사다. 환자가 짜증을 쉽게 내는 상대도 간호사다. 최일선의 '감정 노동자'인 셈이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전공의들의 갈등이 이제 1년이 됐다.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환자들이다. 어렵게 진료 예약일이 정해져도 "제대로 수술이 가능할까?" 불안감이 여전하다. 간호사들은 지난 1년 동안 병원에서 엄청난 ‘감정 노동’을 해왔다. 아직도 위계질서가 강한 편인 병원 안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 끼어 있는 '낀 세대'가 바로 간호사다. 그들 중 일부는 이번 설 연휴가 유난히 추울 것이다. 명퇴, 임금 삭감, 무급 휴직에 아예 발령이 무기한 연기된 간호사들도 있다. 내년 설 연휴에는 이들의 몸과 마음이 더욱 따뜻해지길 기원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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