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 분쟁 마무리 수순…남은 변수는?
임종훈, 반격 힘들 듯...한미사이언스 주총때 대표 해임안 상정 가능성
지난해 초부터 1년 가까이 이어져온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종식되는 것인가. 지난달 26일 오너가(家)의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가 경영권 다툼의 상대방인 4자 연합 측에 지분 5%를 매각하기로 함으로써 경영권 다툼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러나 아직 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의 거취와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으며,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기반으로 한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회사 경영 체제가 안정화하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오는 27일 임종윤 사내이사는 보유 지분 11.79% 중 5%를 4자 연합(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부회장·라데팡스 파트너스)에 매각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임 이사의 지분율은 11.79%에서 6.79%로 줄어든다. 반면 4자 연합은 지분율을 49.42%에서 54.42%로 끌어 올려 과반 이상을 확보하게 된다. 이번 계약에서 구체적인 의결권 행사 관련 조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4자 연합, 안정적 경영권 장악 시나리오는?
현재 한미사이언스의 이사회는 총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표면적으로는 5대 5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임종윤 이사가 4자 연합 쪽 손을 잡으면서 판도가 7대 3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임 이사가 4자 연합 측에 유리하게 의결권을 행사하면, 그의 우호 세력인 권규찬 이사도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4자 연합 측 이사 3명(신유철·김용덕·곽태선 사외이사)의 임기가 만료될 예정이어서, 이사회 구성 변화도 향후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4자 연합은 주총 전후로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준비할 수 있다. 우선 빠르게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4자 연합은 임시주총을 열어 대표이사 해임안과 신규 이사 선임안을 상정할 수 있다. 3월 정기주총 전에 임종훈 대표의 경영권을 선제적으로 차단한 후 3월 주총에서는 임기 만료된 3명의 이사를 재선임하거나, 임주현 부회장이나 라데팡스 측 인사, 전문경영인 등을 신규 선임해 이사회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개편을 통해 조직 안정과 경영 효율성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임시주총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최소 2개월이 소요되므로 3월 정기주총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더불어 임종훈 대표가 주총 의결권 제한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커 분쟁이 장기화할 위험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3월 정기주총에서 대표이사 해임안과 이사 선임안을 동시에 처리함으로써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장악하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마지막으로 4자 연합이 임종윤 이사와 협상을 한 것처럼 임종훈 대표의 자발적 퇴진을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통해 빠르게 분쟁을 마무리짓고, 내부 결속과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임종훈 대표, 어떤 전략 취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현 상황에서 임 대표가 4자 연합의 공세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4자 연합이 이미 과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소액주주를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해임안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소액주주는 안정성과 기업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임 대표가 명확한 성장 비전과 주주 환원 정책을 제시해야만 지지를 얻을 수 있을 뿐더러, 이 과정에서 4자 연합도 주주 신뢰를 강조하며 안정적인 경영을 약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임종윤 이사의 매매거래가 불발되거나 4자 연합의 핵심 인물인 신동국 회장을 설득하는 것이지만, 신 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임 대표를 향해 ‘말을 바꾼다’고 지적한 전례를 고려하면, 그의 편에 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또한 외부 투자자 유치를 통해 경영권 방어를 시도하는 방안도 있지만,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지분 제공이나 경영권 양보와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재무적 투자자가 자본 투자의 대가로 경영 참여나 영향력 확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과거 형제 측이 OCI 통합을 반대했던 논리와 상충돼 경영 철학 모순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사이언스 관계자는 “임종훈 대표가 임종윤 이사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직 지분 매매 계약만 했을 뿐, 거래가 끝난 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그룹, 남겨진 과제 수두룩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더라도 안정적인 경영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신뢰성 제고와 주가 관리가 가장 시급한 과제다.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주주와 시장의 신뢰가 흔들렸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주주와의 소통,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 주주 친화적인 정책과 함께 연구개발(R&D) 강화, 글로벌 시장 공략 등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과 비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분쟁이 마무리된 후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실제로 2022년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된 이후 주가는 7일 연속 하락하며 신저가를 기록했다. 이는 단기 차익 실현을 노린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주가 하락 압력이 가해진 결과다.
특히 신동국 회장의 경영 개입 여부와 4자 연합의 의사결정 과정·범위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만약 이를 명확히 하지 못한다면, 4자 연합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다시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회사의 안정을 저해하고, 시장의 신뢰를 더 크게 잃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한미사이언스는 이사회 구성과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경영 안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