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 이젠 생존 넘어 삶의 질 향상 기대 가능”

이종욱 한양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인터뷰

인터뷰하고 있는 이종욱 한양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PNH처럼 생존율이 향상된 질환은 거의 없어요. 게다가 이제 죽고 사는 문제를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차원의 치료까지 한 단계 나아갔습니다. 다행이죠.”

국내 PNH(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 치료의 선구자로 알려진 이종욱 한양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PNH 치료의 발전에 주목했다. 그는 PNH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부터 이 병에 관심을 갖고 치료제 도입에 앞장 섰다.

PNH는 보체시스템의 과도한 활성화로 적혈구를 공격하는 병이다. 보체시스템은 외부 병원균을 파괴하는 면역 시스템의 일부로,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게 된다. 대표적인 증상으로 ‘용혈’과 ‘혈색소뇨(콜라색 소변)’, 극심한 피로와 빈혈 등이 발생한다. 이 병은 처음에 ‘밤에 콜라색 소변을 본다’는 특징 때문에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실제로는 야간뿐 아니라 언제든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의료계에서도 PNH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고, 혈액내과에서도 간과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며 “하지만 10년 전부터 혈액학회에서 심포지엄도 하고, 치료제도 나오면서 질환이 알려졌고, 지금은 국내 혈액학 전공 의사들의 PNH에 대한 이해도가 전 세계적으로 봐도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PNH는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당 약 15.9명의 유병률을 보이며, 국내에는 약 500명의 환자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혈전증, 폐고혈압, 신부전, 심부전 등의 합병증인데, 특히 혈전증은 PNH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

다행히 '솔리리스(에클리주맙)'가 출시되면서 치료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PNH 환자는 유전자 변이로 적혈구를 보호하는 두가지 주요 단백질(CD55, CD59)이 결핍된다. 이 두 단백질이 부족하면 보체시스템에서 C3가 활성화되고, 이어 C5가 과도하게 활성화하면서 혈관 내 용혈을 발생시킨다. 이때 솔리리스는 C5를 억제해 혈관 내 용혈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솔리리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보체시스템의 뒤쪽에 있는 C5는 억제하지만, C3의 활성화는 막지 못하기 때문에 혈관 외에서 적혈구가 파괴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적혈구 파괴가 비정상적으로 발생하면 자주 빈혈이 나타나고 수혈을 받아야 한다.

혈관내·혈관외 용혈 모두 잡는 '엠파벨리'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약물이 '엠파벨리(페그세타코플란)'다. 엠파벨리는 보체시스템에서 더 상위 단계인 C3를 직접 차단해 보체시스템의 과도한 활성화를 방지하고, 혈관 내 용혈(IVH) 뿐 아니라 비장이나 간 등에서 적혈구가 파괴되는 혈관 외 용혈(EVH)도 해결할 수 있다. 한독이 국내에 도입해 올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 판매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한강이 물에 잠겼다고 해서 한강만 쳐다보는 게 아니라 팔당댐이나 북한강부터 수위를 조절해야 할 수도 있다"며 "상류(C3)를 차단해 보체시스템의 과도한 활성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 EVH와 IVH를 모두 해결하려는 것이 엠파벨리의 접근법"이라고 설명했다. EVH는 자주 발생하지 않아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더라도 환자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하는데 엠파벨리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까지 고려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엠파벨리는 임상 3상에서 솔리리스와 비교해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엠파벨리 치료군은 혈관 내 용혈 지표인 LDH(젖산탈수소효소) 수치가 정상 상한치의 1.5배 미만으로 유지됐고, 16주 동안 수혈을 받지 않은 환자 비율도 85%로, 솔리리스 치료군인 15%보다 높았다. 또한, 환자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인 ‘FACIT-fatigue’ 수치에서도 엠파벨리 치료군은 치료 전보다 9.2포인트 개선됐다. 반면 에클리주맙 치료군은 오히려 2.7포인트 감소하는 결과를 보였다.

이 교수는 “옵션이 많아지니 환자와 상의해서 맞는 약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환자나 의료진의 입장에서 치료의 폭이 넓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환자 치료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발전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치료제와의 차이점은 지방이 많은 배에 약물을 투여하는 피하주사 방식이라는 데 있다. 다만 한 번에 많은 양의 약물을 주입해야 하기 때문에 디바이스 사용이 필요하다는 점이 장애물로 꼽힌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해 보니 큰 문제는 안 되고, 두세 번 알려주니 스스로 하더라”며 “고령 환자나 순응도가 떨어지는 환자에게는 어려울 수 있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교육만 하면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고 덧붙였다.

인터뷰하고 있는 PNH 환자 김대중 씨. 사진=천옥현 기자.

"운동·여행 자유로워져 삶의 질 개선됐죠"

엠파벨리가 PNH 환자들에게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이 교수의 환자 중 한 명인 김대중 씨는 2022년 혈뇨 증세를 경험하고 PNH 진단을 받은 후, 스테로이드제와 엽산 등을 복용하며 치료를 받았다. 이후 그는 이 교수의 권유로 임상시험용 의약품 치료목적 사용제도를 통해 엠파벨리 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치료를 시작한 후, 2주 만에 LDH 수치가 정상으로 떨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아침에 일어날 때 발기가 안 됐던 게 치료 후 바로 되는 게 신기했다”며 “혈뇨가 나온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운동이나 여행 등 여가생활이 자유로워졌다는 점은 그의 삶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이다. 그는 “헬스를 하다가 응급실에 가서 수혈을 받은 이후 운동을 멀리했고, 멀리 여행 가는 것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런 부담을 덜었다”며 “일할 때에도 피로감이 훨씬 줄었다. 치료를 권유해 주신 교수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디바이스 사용에 대해 그는 "처음에는 자가주사라는 게 조금 걱정했지만, 두 번 정도 교육을 받고 시범 동영상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천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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