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블랙프라이데이는 11월 넷째 주 금요일인데, 하루 전날인 목요일은 추수감사절이다. 우리에게는 블랙프라이데이가 더 익숙할 지 모르지만, 미국인들에게 추수감사절은 우리로 치면 추석과 같은 명절이다. 풍성한 수확에 감사 표시를 하면서 가족과 친지, 이웃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대화하고 정을 나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필자는 올해 두 군데서 추수감사절 식사 초대를 받았다. 하나는 지도교수가 외국인 학생들이 미국의 전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였고, 또 하나는 미국인 친구가 고향에 가지 못하는 친구들을 초대한 모임이었다.
지도교수의 집에서는 추수감사절에 전통적으로 먹는 음식들을 소개받았다. 크랜베리 소스, 매쉬드 포테이토, 햄 등. 칠면조 요리가 추수감사절 대표 음식인데, 이날은 치킨으로 대신했다. 식사 후에는 휘핑크림을 얹은 호박파이를 디저트로 즐겼다. 미국에 온 지 3년 차에 접어 들었는데, 호박파이가 추수감사절 전통 디저트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지도교수 집에서 식사를 마친 후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친구도 치킨을 준비했고, 디저트로 호박파이를 내놓았다. 친구 집에서는 각자 음식을 조금씩 준비하는 팟럭(potluck) 형식도 함께 이뤄졌기에, 필자는 한국식 만두와 파스타 샐러드를 만들어 갔다.
추수감사절의 또 다른 전통은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지도교수의 집에서도, 친구의 집에서도 참석자들은 자신이 감사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건강하게 지내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나눴는데, 한 친구는 박사과정을 마무리하며 겪고 있는 스트레스에 대해 언급했다. 많이 힘들지만 주변 지인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 말을 들으며 꽤 오래됐지만 최근에서야 보게 된 TED 강연이 떠올랐다. TED 강연에서 건강심리학자 켈리 맥고니걸 박사는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태도에 얘기했다. 스트레스가 우리의 건강을 해칠 수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43% 이상 수명이 줄어들었지만,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수명에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더 인상적인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옥시토신(Oxytocin) 호르몬 효과였다. ‘애정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은 우리 신체에서 분비됐을 때 출산과 수유를 돕는 역할을 한다. 사랑과 친밀감 등 사회적 상호작용과 관련된 기능도 수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맥고니걸 박사는 이 옥시토신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도 우리 몸에서 분비된다고 설명했다. 즉,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옥시토신이 도움과 지지를 얻고자 하는 본능을 불러일으켜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를 떠올리니 추수감사절이야 말로 옥시토신이 제 몫을 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과 지인들이 한 데 모여 한 해 동안 고생하면서 일궈낸 수확을 축하하는 시간. 힘들었던 시간을 위로 받고 즐거운 일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옥시토신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