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병상 축소보다 중요한건 위급환자 이송 속도”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인터뷰... "빅5병원 일반병상 30% 줄여야 쏠림 완화"
“상급종합병원의 일반병상을 줄이고 경증 진료를 억제하면 환자가 불편하지 않냐고 하는데, 오히려 빅5병원은 일반병상을 15~10%가 아니라 30%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료협력병원(2차병원)으로 회송된 환자들이 재발하거나 위급할 경우 대형병원으로 얼마나 빨리 이송될 수 있느냐죠.”
환자 입장에서 어려운 주제라고 봤지만, 대답에 거침이 없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최근 코메디닷컴과 인터뷰에서 정부의 상급종합병원(대형병원) 구조개편에 대한 생각을 이 같이 밝혔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등 9개 환자 단체가 속해 있는 국내 최대 환자단체 중 하나다.
정부는 지난 9월 27일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방안을 발표했다. 상급종합병원이 본래의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하도록 개편하는 사업이다. 중증진료 비율을 70%로 높이고, 2차 병원 등 진료협력병원들과 진료 의뢰·회송을 강화하고, 일반병상을 5~15% 감축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달 20일 기준 전체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42곳(90%)이 이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병원 경영진은 기존 병원 경증진료 수익이 30~40%를 차지한 만큼, 이 만큼 빠져나가면 중증진료에 대한 보상으로 대체할 수 있는 건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여기에 지역 또는 병원에 대한 환자 의료이용 제한 등이 있지 않는 한 지금의 수도권, 특히 빅5 위주로 환자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안기종 대표는 연간 3조4000억원, 일반 병상 감축 지원에는 약 3400억원이 배정된 것을 강조하며 “병원에 병상을 줄이는 것만큼 보전해 주기에 병원 입장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서울지역은 10~15%, 경기·인천 지역은 10%, 비수도권은 5%를 감축한다는데, 효과를 보려면 서울지역, 특히 빅5 병원은 30%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현재 약 2700병상으로 우리나라에서 병상 수가 가장 많은 서울아산병원도 700병상
정도는 줄여야 환자들이 지역 상급종합병원이나 다른 병원으로 흩어진다. 그래야 지역 병원 임상경험도 많아져 의료의 질도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이라며 “어쨌든 상급종합병원 구조 개편이 제대로만 된다면 상급종합병원들의 평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이미 의정 갈등에 따른 전공의 부족으로 병상 운영을 축소해 놓은 만큼, 일반병상 감축에 따른 병원들의 혼란이나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대표는 “환자들의 의료이용을 보면, 대형병원의 진료 지연이나 병상 운영 감축을 알고 있고, 그에 맞춰 스스로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반병상 감축을 더 확대해야 효과를 볼텐데, 지금은 그냥 의정갈등 사태에서 병원들이 기존에 감축한 것을 보상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안 대표는 환자들 입장에선 진료협력센터에서 얼마나 수월하게 진료 의뢰·회송을 관리하는 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진료협력병원으로 회송된 환자가 암이 재발한다거나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상급종합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해 오도록 하는 ‘패스트트랙’ 구축이 이번 구조 개편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봤다.
안 대표는 “기존 진료의뢰·회송 제도는 제대로 가동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일례로 이 제도를 통해 회송된 2차병원의 의사가 임상 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빠른 진료가 이뤄지지 않아 환자가 일일이 찾아서 할 수 밖에 없었던 경우도 많았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환자들이 이번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에 가장 크게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패스트트랙 제도”라며 “이것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진료협력센터의 인원이 늘어나야 한다. 단순히 행정적인 일만 기계적으로 해서는 곤란하며, 개인 역량이 좋은 직원들이 배치돼 일을 능동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대표는 진료협력센터 역량과 지역협력병원 네트워크에 환자들의 반응이 좋았던 곳으로 삼성서울병원을 언급했다. 그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조정 시범사업 전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을 삼성서울병원이 하긴 했지만, 그 이전부터 지역의 협력병원을 괜찮은 곳으로 선별해 역량을 강화하고, 환자의 빠른 전원이나 이송이 잘 이뤄졌다는 평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패스트트랙의 핵심은 중증 진료 병상 중 얼마를 예비 병상으로 비워두느냐, 그리고 패스트트랙으로 긴급 이송된 환자를 우선적으로 볼 수 있도록 외래 진료 일정을 조절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그런 것을 구조전환 시범사업에서 중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안 대표는 협력병원의 질을 보장해 환자의 신뢰를 얻는 것도 이번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의 목표 달성과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핵심 중 하나라고 봤다.
그는“거점병원이 될 상급종합병원이나 정부가 진료협력병원의 역량을 강화하고 검증해서 의료 질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추후에는 환자단체에서 민원 콜센터도 만들어 협력병원 이용 및 회송 과정에서 나온 불편함을 모아볼 계획도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정부는 최근 상급종합병원의 환자 의료 이용 제한을 위해 현재 응급실 경증 진료 제한 방식과 유사한 형태를 도입할 계획도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 :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에서 낮은 경증질환은 높은 본인부담금을 적용하는 방식과 같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실질적으로 실손보험 때문에 환자 본인부담을 높여도 소용이 없고,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저소득층의 의료이용만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며 “앞서 말한 것처럼, 진료협력에 대한 신뢰를 높여 합리적 의료이용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