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동설과 지동설에 버금가는 비만의 정설과 역설

[장준홍의 노자와 현대의학]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누구나 믿고 있는 ‘많이 먹고 덜 움직여서 비만해진다’는 정설(定設)이 앞으로도 변치 않으리라 여기겠지만, ‘비만해서 많이 먹고 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역설(逆設)을 끝내 무시할 수만은 없다. 많이 먹고 덜 움직여서 비만해지는 게 아니고, 비만해서 많이 먹고 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놀라운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현재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비만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천동설에 맞서 지동설이 등장했던 시기와 버금가는 때가 왔음을 무시하면 안 된다. 늘 그래왔듯이 기존 이론을 수정 보완해서 과학이 발전하는 게 아니라, 기존 이론을 버리고 새로운 이론으로 교체하는 혁명으로 과학이 발전해왔다. 비만의 정설과 역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따라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매스컴에서 뱃살 빼는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1년 동안 소개하는 수많은 뱃살 빼기 전략을 모두 모아 보고 싶을 정도다. 전략이 많다는 것은 뱃살 빼기 필승전략을 여태껏 모르고 있다는 고백이다. 생뚱맞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뱃살을 체지방을 예금해두는 은행 계좌라 여기면 비만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은행에서 예금할 때는 갖춰야 하는 조건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간단하지만, 다른 이의 계좌도 아니고 바로 내 예금계좌인데 불구하고 현금을 찾을 때는 비밀번호를 정확하게 입력해야 한다. 예금계좌에서 함부로 현금을 빼가지 못하게 장착한 보안장치를 통과해야 하는 것과 같다. 예금계좌 인출과 마찬가지로, 뱃살을 빼려면 비밀번호에 해당하는 필수 조건을 갖춰야 한다.

음식물을 섭취해서 흡수한 탄수화물이 분비하게 하는 인슐린은, 음식물을 섭취해서 흡수한 다음 쓰고 남는 에너지를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 필요할 때 쓸 비상용으로 알뜰하게 비축해 놓는다. 그리고 어렵사리 비축해놓은 에너지를 아무런 조건 없이 헤프게 꺼내주지 않는다. 곳간 키를 며느리에게 쉽게 건네지 않는 시어머니에 비유할 수 있다.

은행 계좌에서 예금을 인출할 때 정확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고, 또 집에 들어갈 때도 현관문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반드시 입력해야 한다. 숫자 하나만 틀려도 현금을 찾을 수 없고, 집에 들어갈 수 없다. 뱃살에 비축해놓은 체지방을 빼서 비만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뱃살 체지방 조직에서 까다로운 조건을 어김없이 요구한다. 조건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비만으로부터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조건을 무시하고 비만과 함께 살 것인가?

비만하면 에너지의 공급원으로 쓰이는 지방이 '침묵의 염증'이라는 덫(fat trap)에 걸려있어서 에너지로 이용할 수 없기에 하는 수 없이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구할 수밖에 없다. 즉 또 먹어야 한다. 그리고 뱃살에서 에너지를 꺼내지 못할 바에야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즉 움직이지 않아야겠다는 지혜를 발휘한다. 즉 많이 먹고 덜 움직이는 생활방식은 비만해서 따라오는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많이 먹고 덜 움직이는 생활방식이 비만의 원인이라는 현재의 정설을 버리고, 비만의 결과라는 역설을 인정해야 한다.

    장준홍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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