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 강제입원 거부권만 인권인가요?”

[Voice of Academy 16-인터뷰] 안용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안용민 이사장이 정신병 환자의 적극적 치료 필요성을 언급하며 "치료가 곧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서울대병원]
20대 여성이 부모가 부른 사설 구급대를 통해 정신병원에 실려왔다. 여성은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왔다”고 울부짖었고 부모는 침통한 표정만 지을 뿐 말이 없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여성을 다각도로 진단했더니, 전형적인 피해망상장애로 드러나 급히 입원시켰다. 환자가 법원에 제소하자, 전문의는 법원에 입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서와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 명령에 의해 환자는 퇴원했고 곧바로 자취를 감췄다. 부모는 혹시 사고가 나거나 사고를 낼 지 눈물과 탄식 속에서 몇 달째 딸을 찾고 있다.

20대 초반의 중증 조현병 환자가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왔다. 망상과 환각이 일어나면 주위에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잦았고, 어떤 더 큰 일이 벌어질지 몰라 어머니는 간절히 입원을 원했다. 그러나 부모의 입원동의서에 10여 년 전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아버지의 서명이 빠져있었다. 법원은 “아버지를 찾아서 동의를 받아오라”고 했지만,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는 형은 동의 권한이 없다니….

아들과 딸이 미국에서 일하고 있어 며느리, 손주와 함께 사는 60대 여성은 식사를 거부하고 있다. 며느리가 자신을 독살하기 위해 밥과 물에 독을 탄다는 망상 때문. 틈만 나면 며느리에게 욕을 하며 물건을 집어던져 입원이 시급했다. 미국의 아들이 화상 동의를 요청했지만 법원은 허가하지 않았다. 아들은 결국 어머니 입원을 위한 서명 때문에 연구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급히 귀국해야만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안용민 이사장(60·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정치권에서 인권의식이 없던 1960,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드라마나 현실의 극단적 사례를 토대로 만든 법 때문에 수많은 환자와 가족이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면서 “이제는 시대에 맞도록 환자가 적절히 치료받을 수 있는 인권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다양한 현실을 반영해 법을 바꾸거나 현실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법’은 정신질환자의 입원 요건을 대폭 강화한 2017년 정신건강법 개정안. 당시 대다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시행됐다.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이나 2023년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의료계에서 끊임없이 경고한, 언젠가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환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치료를 방치한 국가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시한폭탄’을 안고 조마조마하게 사는 것을 강요받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입법을 주도한 국회의원이 어이없이 숨진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법 개정 이후에도 강제입원 피해 환자가 사라지지 않고 있지 않나?

“물론, 극소수 환자가 억울하게 강제입원할 위험이 0%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또 자신이 강제입원당했다는 환자는 목소리를 높이게 마련이지만, 환자를 입원시켜야 하는 수많은 가족은 목소리를 거의 낼 수 없는 게 우리나라 가족문화의 현실이다. 또 예전과 달리 지금은 사회 전체의 인권의식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져 폭력적 강제입원은 거의 불가능한 사회가 됐지 않은가. 무엇보다 환자가 적절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인권 중시 아닌가? 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환자의 거부권만 중시하는 것이 인권 존중인가? 또 사회 구성원들이 위험요인으로부터 보호받는 권리도 인권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법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치료 방치하면 사고 위험...치료가 곧 인권"

-최근 법원이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을 보면 정신건강법 체계에서도 사고 예방이 가능하다고도 읽혀지는데….

“그 사건은 정신병 환자의 적극적 치료 필요성을 생생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환자는 치료를 받았던 6년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 부모가 숨지고 형이 챙겨주지 않아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 주민들이 일곱 차례나 신고했지만 경찰이 움직이지 않는 사이 대형 사고가 터졌으므로 법원이 국가 책임을 인정했고 법무부도 이를 수용해 항소를 포기했다. 그러나 현실을 알면 경찰을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선 응급 행정입원을 하려면 경찰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 전문의 동의를 받아 사흘 입원시킬 수 있다. 환자가 사흘 뒤 퇴원해서 민원을 제기하면 경찰이 책임져야 하므로 경찰은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안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치료=인권’을 강조했다. 조현병 환자가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면 사고 위험이 커지고, 사고 뒤엔 사회 전체에 병에 대한 편견이 퍼져 환자가 숨으려 하고, 이 때문에 치료와 보호를 받지 못해 사고 위험이 더 커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므로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뒤 지역 주민들이 피해자를 위한 나무 33그루를 심었는데 그 가운데는 총탄을 난사한 조승희를 위한 나무도 있습니다. 환자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피해자가 됐다는 인식이 정확한 것 아닐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외국 사례를 참조하면 좋을 것 같은데….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선 환자가 자해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위험이 있거나, 혹은 치료가 시급한데 환자가 거부하면 정부나 의사, 사회복지사 등이 입원을 집행할 수도 있고 경찰이 법에 따라 집행하면 면책 사유가 된다. 학회에서는 차선으로 판사들이 영장심사를 하듯이 입원 여부를 판결토록 하는 ‘사법입원 제도’에 대해서도 찬성한다. 미국에선 환자가 퇴원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하면 판사가 병원에 와서 환자를 인터뷰한 뒤 의사의 기록을 보고 퇴원 여부를 결정케 한다.”

-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사회의 변화 때문이라도 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점이 그런가?

“그렇다. 사회가 바뀌고 있다. 지금은 혼자 사는 사람이 많고 보호자가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법은 부모 2명이 서명하거나 친권자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길 요구하고 있다. 환자의 보호자가 예외 규정을 인정받으려면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유권해석을 받아야 하는데 답을 못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다른 의미에서 지금은 환자가 대형사고를 일으킬 방법이 너무나 많은 시대가 됐다. 환자를 방치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안 이사장에 따르면 정신보건법은 탈원화(脫院化)에 초점을 맞췄는데 개발독재시대의 인권 개념만 강조돼 있다. 행복권이 강조되는 현재는 새 인권 개념과 치료의 개념이 조화롭게 기능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할 것을 권고했다. 안 이사장은 “만성 정신병은 최소 3개월에서 몇 년 입원해야 하지만 대학병원에선 3개월 이상 입원하기 힘들게 만들었고 정신과 질환과 다른 병이 같이 있을 때 입원 필요성도 간과돼 있다”고 덧붙였다.

회색지대 환자들 위한 대책 거의 안보여

-조현병이나 중증 망상장애 환자의 자·타해뿐만 아니라 조울증, 우울증 환자의 자살도 문제인 듯한데….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선진국 가운데 최상위라는 것은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선진국들에게 정신질환 의료비를 신체질환 대비 최소 5% 집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2% 수준으로 턱없이 낮다. 우울증, 조울증 환자의 상당수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자살로 이르고 있는 환경인 셈이다. 중증 환자는 급성기를 극복하면 ‘회색 지대’를 거쳐 만성기로 들어가는데 회색 지대의 환자들을 위한 대책이 거의 없다. 쉼터나 부분입원 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고 쉼터도 자해나 타해 위험 평가가 안된 상태에서 들어가게 해 다른 사람과 갈등 소지를 증폭할 우려가 있다. 지금까지는 가족이 자살 위험에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지만 돌봐주는 사람이 없을 때에 대한 대비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를 방치하는 것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

안 이사장은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정신질환에 대해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신과 영역에서 치료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희망적 신호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지고 있지요. 젊은 분들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는 것을 덜 주저합니다. 환자도 옛날에는 조현병, 중증 우울증 등 중환자 위주였다면 지금은 증세가 덜 심한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환자 등 다양합니다. 대중문화가 순기능을 한 측면이 있지요. 그러나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권의식과 이로 인한 법제도가 문제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치료가 곧 인권입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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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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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o*** 2024-11-20 16:35:12

      뭐...인권 기반 치료를 하는 의사들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춘천의 251시간 50분 강박 사망시킨 정신병원은 처벌을 받고 의료계에서 퇴출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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