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어떻게 기억 형성을 방해하나

편도체의 특정 화학전달물질 분비 억제해 세부기억 형성 방해

스트레스가 기억 형성을 방해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트레스가 기억 형성을 방해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 결과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치료법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5일(현지시간)《셀》에 발표된 캐나다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네이처》가 보도한 내용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생쥐는 뇌에서 기억 형성을 방해하는 신경세포다발을 형성해 무해한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는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이 안전한 환경에서도 종종 위협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과학자들은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무해한 상황에서도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뜨거운 팬에 손가락을 데인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은 이후 뜨거운 팬뿐만 아니라 부엌이나 요리 자체를 피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일반화된 공포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범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기억은 기억이 형성될 때 활성화되는 엔그램(engram)이라는 신경세포군으로 구성된다. 캐나다 토론토대 의대의 시나 조셀린 교수(생리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스트레스가 엔그램 형성을 방해하는지 살펴보면서 스트레스와 감정 반응에 관여하는 편도체라는 대뇌변연계에 위치한 기관에 초점을 맞췄다.

이 연구는 생쥐를 대상으로 정교한 3단계 실험을 거쳤다. 먼저 일부 성체 쥐에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을 주사하거나 작은 튜브에 30분 동안 가둬 코르티코스테론 수치를 높여 스트레스 상태에 빠뜨렸다.

그런 다음 스트레스를 받은 생쥐와 그렇지 않은 생쥐를 각각 방에 넣고 30초 동안 중립적인 이벤트로서 중간 음의 소리를 들려줬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 30초 동안 고음의 휘파람 소리를 들려준 다음 2초간 발에 충격을 가해 공포 경험을 갖게 했다.

생쥐가 이러한 경험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저장하고 있는지 검사하기 위해 연구진은 새로운 환경에 놓고 두 가지 음조의 소리를 들려주면서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생쥐는 주로 고음의 휘파람 소리를 들었을 때 얼어붙은 반면, 스트레스를 받은 생쥐는 두 소리 모두에 반응하여 중립적인 사건과 두려운 사건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시사했다.

연구진은 설치류의 신경 활동을 시각화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기억 형성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쥐는 휘파람 소리와 발 충격에 반응해 작은 엔그램을 형성하고, 이 엔그램은 휘파람 소리에 노출됐을 때만 다시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은 쥐는 더 큰 엔그램을 형성했고, 이 엔그램은 두 소리에 모두 노출됐을 때 다시 활성화됐다.

추가 실험을 통해 스트레스를 받은 생쥐의 뇌에서 더 큰 엔그램을 생성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밝혀졌다. 정상적인 조건에서 편도체에 있는 특정 신경세포는 감마아미노뷰티르산(GABA)이라는 화학전달물질을 방출해 신경 활동을 차단한다. 이렇게 하면 부정적인 기억에 대한 반응으로 작은 엔그램이 만들어진다. 조셀린 교수는 “이는 나이트클럽 입구에 설치된 벨벳 로프와 비슷하다”며 “특정 신경세포만 나이트클럽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흥분성 신경세포는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라는 신경전달물질로 뇌를 펌프질한다. 엔도카나비노이드는 억제성 신경세포의 글루코코르티코이드(glucocorticoid) 수용체와 결합해 GABA를 방출하지 못하게 해 엔그램이 더 커지게 만든다. 다시 말해, 벨벳 로프가 제거되면서 “많은 신경세포들이 회원제 고객만 받는 나이트클럽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가 조셀린 교수는 말했다.

연구진은 두 가지 약물을 사용해 스트레스가 기억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초기 인신중절약으로 승인된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이다. 이 약물은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나 엔도칸나비노이드 생성을 차단해 스트레스를 받은 쥐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쥐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 약물이 뇌를 넘어서는 부작용이 있고 기억이 형성되는 시점에 투여하는 경우에만 효과가 있으므로 사람들에게 유용할 가능성이 낮다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이제 기억이 형성된 후에 엔그램이 변경될 수 있는지, 아니면 스트레스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를 조사 중이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cell.com/cell/abstract/S0092-8674(24)01216-9?_returnURL=https%3A%2F%2Flinkinghub.elsevier.com%2Fretrieve%2Fpii%2FS0092867424012169%3Fshowall%3Dtrue)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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