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칼'대지 마?" 통증 뒀다가...다리 마비되고 소변도 지린다고?
[나누리의 골(骨)키퍼]
진료실 문이 열리면서 남편의 부축을 받아 몇 발짝 옮기고, 휘청거리며 의자에 겨우 앉은 30대 중반의 A씨. 다른 병원에서 빨리 수술하자고 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허리는 칼 대는 것 아니다”며 말리는 바람에 혼자 통증과 싸우다 더 이상 못참고 왔다며 울먹였다. “서 있기도 힘들고 화장실에 가서 계속 (배뇨에) 실패하고 대신 나오면서 지려요. 죽고 싶어요.”
자책하는 환자를 달래고 상태를 살펴보니 전형적인 ‘말총증후군(Cauda-Equina Syndrome)’이었다. 척수의 아래쪽으로 말꼬리나 말갈기처럼 뻗어나온 신경다발이 압박돼 독특한 증세가 나타나는 병을 가리킨다. 말꼬리증후군, 마미(馬尾)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선천적 척수이상, 척수종양, 외상 등 다양한 이유로 생기지만 가장 많은 것은 허리디스크병 탓이다. 허리통증뿐 아니라 요실금, 변실금, 소변 정체 등 배뇨장애나 성기능장애, 엉덩이 부분의 감각상실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A씨는 튀어나온 디스크가 말총신경을 강하게 눌려 산통에 버금가는 요통으로 고통받았고, 다리로 뻗는 통증 탓에 머리가 쭈뼛쭈뼛하며 신음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 발목은 감각이 없었다. 1분, 1초가 급하다고 여겨 곧바로 영상검사를 지시했고, 디스크를 제거하고 신경이 지나는 길목을 넓혀주는 신경감압수술을 시행했다. A씨는 온몸이 마비되는 것을 면했지만 다리 힘이 온전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6개월의 재활기간이 필요했다.
허리디스크, 즉 요추간판탈출증은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때가 많지만, 다리쪽으로 통증이 뻗어나가거나 찌릿찌릿하면 하루빨리 전문의에게 찾아가야 한다. 발목이나 엄지발가락의 힘이 빠지면 대부분 신경이 심하게 눌린 탓인데 많은 환자들이 허리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방치하다가 병을 키운다. 다리 힘이 빠지고 마비가 나타나면 응급상황이다. 이때를 놓치면 장애가 영구적이 돼 눈물과 한숨으로 자신을 책망하기도 한다.
다리마비보다 더 심각한 응급상황은 대소변 장애
허리디스크 환자에게 다리마비보다 더 심각한 응급상황은 대소변 장애이다. 신경이 압박받아 배뇨나 배변의 감각이 둔해지거나,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A씨도 이런 경우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소변이 방광을 넘쳐 저절로 새나올 수 있다. 응급 상황으로 간주되며 즉각적 치료가 필요하다. 여성은 요도와 항문이 서로 가까워 요로 감염 위험도 커진다.
A씨는 초기에 수술을 권유받았을 때 바로 수술받았다면 고생을 덜 했을 것이고 회복도 더 빨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소변 장애까지 이어진 응급 상황에서 진단과 수술까지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A씨는 예외적으로 젊은 환자였지만, 고령 환자는 여러 심혈관계 합병증과 감염 위험이 높아지므로 내과와 협진이 가능한 병원을 찾는 게 이상적이다. 또한 전문 간호 인력이 24시간 돌봐주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운영하는 병원을 선택하기를 권장한다.
허리디스크는 가벼운 요통 증상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신경압박이 심해졌는데도 이를 방치해 심각한 합병증으로 발전하는 일도 적지 않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허리 통증이나 다리 통증이 있다면 가까운 병원을 방문해 적절한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주위의 ‘카더라 조언’에 현혹되지 않기를 빈다. 시기를 놓치고 온몸이 마비돼 자리보전하게 돼도 그런 사람이 당신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