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이뤄진 자가 폐동맥 판막 이식 ‘로스수술’
서울아산병원 "항혈전제 복용 필요 없고 재수술 가능성 낮아"
김호진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환자 본인의 폐동맥 판막으로 손상된 대동맥 판막을 대체하는 ‘로스(ROSS)수술’을 최근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국내에서 성인 환자에게 로스수술이 시행된 건 약 20년 만이다.
로스수술은 1967년 영국 의사 도널드 로스(Donald N. Ross)가 개발한 대동맥 판막 질환 수술법이다. 이 수술은 환자 본인의 폐동맥 판막 조직을 사용해 생체 적합성이 뛰어나며 재수술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동맥 판막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그동안 기계판막 혹은 소·돼지 등의 동물 조직을 이용한 조직판막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질환을 치료해왔다.
기계판막은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혈전 발생 위험 때문에 평생 항혈전제 복용이 필요하다. 조직판막은 수명이 10~15년으로 짧아 특히 젊은 환자에서 재수술 위험이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최근 많이 시행하는 대동맥 판막 스텐트 시술도 조직판막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재시술이 필요해 고령 환자 중심으로 시술해왔다.
로스수술은 이같은 단점을 보완한다. 환자의 폐동맥 판막을 떼어내 대동맥 판막 자리에 이식하고, 비어 있는 폐동맥 판막 자리에는 폐동맥 동종판막조직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공판막 사용과 관련된 항혈전제를 복용할 필요가 없고, 재수술 가능성도 낮아 젊은 환자들에게 특히 적합한 치료법이다.
로스수술은 폐동맥 판막과 대동맥 판막을 동시에 수술하기 때문에 의료진의 숙련된 기술과 조직 관리가 필수적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극소수 병원 의료진이 성인 로스수술을 시행한 바 있다. 당시 동종판막 획득 후 보관하는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 감염 우려가 있었고, 기계판막과 조직판막 등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수술이 중단된 바 있다.
그러나 현재는 기증받은 동종판막조직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환자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재수술에 대한 부담이나 항응고제 복용 걱정을 덜 수 있는 수술 방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병원 내 조직은행을 통해 심장이식 수혜자로부터 기증받은 폐동맥 동종판막조직을 환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조직 처리 과정은 약 8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항생제 및 냉동처리 과정 등을 통해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진다. 매 과정마다 미생물 검사를 시행하며, 검사에 문제가 없다면 최대 10년 동안 보관할 수 있다.
김호진 교수는 “로스수술이 재도입되면서 젊은 대동맥 판막 질환 환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