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기준 완화하자고?..."글로벌 추세와 동떨어진 것"
일부 전문가, 비만 기준 완화에 회의적... "축적된 연구 토대로 논의해야"
비만 전문가들은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제안한 비만 기준 완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합병증 사전 관리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비만 기준 변경을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비만 기준 완화를 둘러싼 논쟁이 불붙을 전망이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연구원은 체질량지수(BMI) 25 구간에서 사망위험이 가장 낮고, BMI 18.5 미만과 BMI 35 이상에서 사망위험이 가장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BMI 25 이상에서 질병발생위험 증가 폭을 보면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은 BMI 27 구간, 심혈관질환은 BMI 29 구간, 뇌혈관질환은 BMI 31 구간에서 이전 구간 대비 증가 폭이 커졌다. 이런 데이터 등을 토대로 비만 진단 기준을 BMI 27로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BMI 기준이 이렇게 바뀌면 키 대비 몸무게의 비만 기준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25세 여성의 키가 165cm에 몸무게 69kg이면 BMI는 25.34이므로 현재 기준에선 비만이나 BMI 27 기준으로 따지면 비만이 아니다. BMI 27을 비만 기준으로 하면 74kg(BMI 27.18) 이상부터 비만이 된다.
이같은 건보공단 의견에 대해 대한비만학회는 비만 진단 기준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전문가들도 기준 변경을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 축적과 정당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국가기관이 진행한 연구 결과를 존중한다”면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10년 전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 같이 비만 기준을 잡을 때에도 국내 비만과 사망률 간의 많은 연구들을 바탕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한 기준을 잡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사람들의 식생활이나 질병 패턴, 사망률, 기대여명이 바뀌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기준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며 “다만 질병 기준을 바꿀 때에는 많은 역학적 자료를 토대로 타당한 근거가 있을 때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건보공단의 연구를 논하기 보다, 관련 연구들이 더 축적된 종합 결과를 보며 비만 진단 기준을 바꿀 수 있을 때 바꾸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박정환 한양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비만은 2형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지방간, 골관절염, 수면무호흡증 같은 질환들과 연관성이 높다. 그 질환들이 결국 뇌졸중 등 중증 질환으로 연관되기에, 비만 기준을 BMI 25에서 27로 바꿔야 한다는 공단의 주장은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합병증 위험을 고려해 비만 전 단계부터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어 박 교수는 “전 세계 의학 트렌드를 보더라도 유럽비만학회는 비만 기준을 더 낮췄다”며 “BMI 30이 서구권의 비만 기준인데, BMI 25이면서 대사질환이 있으면 비만으로 간주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적용시켜 진단하고 관리하겠다는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건보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의 연구 결과와 주장은 세계적인 의학 추세와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건보공단의 연구결과가 비만 진단 기준을 완화함으로써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약제비 등)을 억제하고 환자 통계를 개선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의과대학 교수는 “사회적 비용 추계와 비만 환자 비율이 커지고 국가질병통계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비만 진단 기준 변경을 연구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정치적인 논리로, 혹은 건보재정 지출과 연관된 논리로 국민건강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