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돌연사 주범 비후성 심근증, '먹는 약' 치료 길 열렸지만...

[인터뷰] 이현정 신촌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이현정 신촌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분명 치료가 어려운 희귀병은 맞지만, 생각보다 흔한 질환이기도 하다.'

심장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는 '비후성 심근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 이하 HCM)'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질환에 대한 인식과 진단이 어렵다보니 실제로 병을 진단받지 못한 환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분석이다.

최근 의료계는 병의 발생 원인을 바로잡는 표적치료제(심장 마이오신 억제제)가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치료 성적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이에 학계 전문가들은 "조기 진단을 통해 치료가 제 때 이뤄지면 심장 돌연사와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코메디닷컴은 이현정 신촌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사진)를 만나 국내 HCM 진단 상황과 최신 치료 전략에 대해 물었다. 이 교수는 한국심초음파학회가 2023년 발족한 비후성 심근증 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젊은 심장병 전문가로, 국내 환자 현황과 임상 데이터를 취합해 레지스트리를 구축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HCM은 진단 활성화와 치료 접근성 확대가 중요하기 때문에 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HCM 환자는 심장 구조가 변형되면서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심장초음파나 MRI와 같은 영상검사 결과, 고혈압이나 대동맥판막 협착증 등 다른 기질적인 원인이 없음에도 '심장 벽 두께가 15mm 이상' 두꺼워졌을 때를 HCM으로 진단한다. 근본적인 발생 원인은 심장 근육에 있다. 근육을 구성하는 액틴과 마이오신이 서로 과도하게 결합하면서 심근을 지나치게 수축시키고 또 이완까지 어렵게 만든다. 심장이 혈액 공급과 혈류 순환을 담당하는 주요 장기인 만큼 환자 사망률이 일반인 대비 4배 이상 높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증상이 한 번 발생하면 환자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지장이 생길 정도로 신체 활동이 제한된다. HCM 환자들은 계단 오르기를 비롯해 달리기 등 가벼운 활동을 하는 중에도 호흡곤란 및 심계항진, 흉통, 실신 등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심한 경우엔 심부전과 심방세동, 실신, 심장 돌연사까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증세가 심한 폐색성 비후성 심근증(obstructive hypertrophic cardiomyopathy, 이하 oHCM) 환자들은 심장에서 대동맥으로 혈액을 내보내는 통로(좌심실 유출로)가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전신에 혈액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치명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치료법이 없어 단순 증상 완화에만 치료의 초점이 머물렀다는 점이다. 그동안 쓸 수 있는 약이 없어 심장 근육의 수축을 약하게 만드는 '베타차단제'나 '칼슘채널차단제' 등 혈압약을 사용해왔지만, 장기적인 증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고 효과도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더욱이 이들 약물에 효과가 없는 환자들은 두꺼워진 심장 벽을 잘라내는 수술(심근절제술)만이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로 신체적, 심리적인 부담이 상당했다.

이렇게 미해결의 영역으로 남았던 HCM 치료에 표적 옵션이 등장했다. 이 분야 최초의 심장 마이오신 억제제로 분류되는 ‘캄지오스(성분명 마바캄텐)’는 oHCM 환자에서 과도하게 활성화된 액틴-마이오신 결합 개수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여러 약물 가운데 환자의 심장 혈관 폐색 상태와 증상 개선 효과를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5월 증상성(NYHA class II-III) 폐색성 비후성 심근증 성인 환자의 운동 기능 및 증상 개선을 위한 치료제로 허가를 획득하고, 올해 7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급여 적정성을 인정받아 최종 건강보험 급여 적용 결정을 앞둔 상황이다. 본격적인 처방까지 환자들의 기다림도 그만큼 길어지고 있다.

표적치료제의 진입과 함께 최근 들어 환자 발굴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심장초음파의 시행 빈도가 늘면서 숨은 환자 찾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2021년부터 심장초음파 검사에 급여 적용이 확대되면서 2019년 54만건이었던 검사 건수는 2023년 172만건을 훌쩍 넘기며 HCM 환자 발굴에 기회를 높이고 있다.

이 교수는 "일반적으로 HCM 유병률은 200~500명 중 한 명 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재 심평원에 등록된 환자수는 약 2만2천명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추정 환자의 10~15% 수준으로, 진단받지 못한 환자가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심초음파 검사가 활성화되면 진단 환자수도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혁신적인 신약이 출시됐지만 아직 급여 등재가 되지 않아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원하지만 경제적 부담 때문에 급여 이후로 치료를 미루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급여 등재가 이뤄져 더 많은 환자들이 치료 혜택을 받아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현정 교수와 일문일답.

이현정 신촌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Q. 비후성 심근증, 구체적으로 어떤 질환인가?

-(이 교수): 심장 근육 단백질 유전자 이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근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심장 근육 세포의 구성 단위인 근절(sarcomere)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변이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미 알려진 유전자 변이도 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변이들이 더 많다. HCM 발생과 관련이 높은 유전자 변이는 대부분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기에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50% 정도다. 따라서 HCM 환자 직계 가족에게는 심초음파, 심전도 검사를 함께 받도록 권장하고 있다.

Q. 국내 환자에서 관찰되는 임상적 특성이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

-HCM 유병률은 인종에 관계없이 비슷하지만 심장이 비후되는 부위에는 차이가 있다. 서양에서는 주로 심실중격이 비후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국내에서는 좌심실 심첨부가 비대해지는 경우가 흔하다. 실제로 서양인에서는 좌심실 심첨부 비대 비율이 2~3%에 불과하지만 국내에서는 약 20%로 더 많다.

좌심실 심첨부 부위가 비대해진 HCM 환자들은 심장 벽 뿐만 아니라 승모판막 모양이 변형돼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자 중 일부는 승모판막이 헐거워지면서 심장이 수축할 때 좌심실 유출로가 폐색되는 ‘역동적 폐색’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가 폐색성 비후성 심근증(oHCM)에 해당한다. 서양에서는 oHCM이 전체 환자의 약 2/3를 차지하지만 국내에서는 그 비율이 1/3 정도다.

증상이 발현된 oHCM 환자는 좌심실 유출로가 폐색되면서 호흡곤란, 흉통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면서 유연성을 잃기 때문이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심장 근육의 경직이 진행되는데, HCM 환자들은 일반인보다 이 과정이 더 빠르게 일어난다. 즉, HCM 환자들의 심장은 더 빠르게 노화된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부정맥, 심방세동, 심실빈맥, 심부전, 뇌경색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악의 경우 돌연사까지 발생할 수 있는데, 실제 젊은 운동선수에서 나타나는 돌연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HCM이다. 돌연사는 다른 증상 여부와 관계없이 발생할 수 있어 더 치명적이다.

무증상인 HCM 환자들도 부정맥, 심부전, 뇌경색과 같은 합병증 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 보통 일반 인구에서 심방세동 발생 위험이 약 5%인 반면, HCM 환자에서는 그 위험이 약 20%로 4배 가까이 높다. 특히 심장 근육이 경직된 상태에서 심방세동이 발생하면 뇌경색 위험이 더욱 커진다. 따라서 증상이 없더라도 HCM 환자들은 추가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심초음파와 심전도 검사를 통해 상태를 지속적으로 추적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Q. 감별진단도 중요할 것 같다. 주로 어떤 질환과 구별해서 봐야하나?

-심장 벽이 두꺼워지면 심전도에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 때 심근경색이나 관상동맥 질환과 유사한 소견이 보일 수 있다. 건강검진 중 협심증 소견이 있다고 진단받아 내원하는 환자들도 있다. 이러한 경우, 협심증과 감별을 위해 심초음파 검사를 실시해 심장 벽이 두꺼워졌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다만 심장 벽이 두꺼워졌다고 해서 모두 HCM으로 진단되지는 않는다. HCM 외에도 아밀로이드증, 파브리병, 당원 축적병 등 2차적으로 심장 비대가 발생할 수 있는 질환도 있기에 이를 정확히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HCM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홀터검사(24시간 심전도검사), 심장MRI, 심장CT, 운동부하검사 등을 시행한다. 검사 결과에서 부정맥, 심부전 등이 발견되거나 급사 위험이 높은 경우에는 제세동기 삽입을 고려할 수 있다.

Q. 미국과 유럽 심장학회는 진료지침 업데이트를 통해 심장 마이오신 억제제 사용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기존 약물과 비교했을 때 실제 효과는 어떤가?

-캄지오스가 작년 유럽심장학회(ESC) 가이드라인에서는 2차 치료제로 권고(Class IIa, Level of Evidence A)를 받았는데, 올해 미국심장학회 및 심장협회(ACC/AHA) 가이드라인에서는 1차 치료제(Class I)로 권고를 받았다. 이러한 변화만으로도 앞으로 oHCM 치료 지형이 캄지오스를 중심으로 변화할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베타차단제, 칼슘채널차단제 등 약물로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환자들은 심근절제술을 받아야 했다. 국내는 서양에 비해 심근절제술을 받는 환자 비율이 적지만 심근절제술은 고난이도의 침습적 치료이므로 이를 시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수술 과정에서 심장 전도계 조직 등이 손상될 경우 서맥이나 부정맥 등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VALOR-HCM 연구'에서는 좌심실 유출로 압력차가 50mmHg 이상으로 심근절제술이 필요한 oHCM 환자들에게 16주 간 캄지오스를 투여해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캄지오스 치료를 받은 환자의 약 82%가 더 이상 심근절제술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개선됐다. 이는 캄지오스가 심근절제술에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결과로, 심근절제술 없이 캄지오스 경구 복용만으로도 oHCM 환자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Q. 어떤 환자들을 우선 처방 대상으로 고려하나?

-증상이 발현된 oHCM 환자 중 베타차단제 치료에 반응이 없는 환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캄지오스 처방을 고려하고 있다. 증상이 심각한 일부 환자들은 현재 비급여로 캄지오스 치료를 받는데, 예후와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일례로 한 중년 남성 환자는 캄지오스 치료 후 한 달 만에 호흡곤란 증상이 사라지고 이전에 할 수 없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 사례도 있다.

    원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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