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항문외과 의사의 혹독한 일상... 밤샘 수술에 몸은 녹초, 보상은?

[김용의 헬스앤]

대장암의 가장 근본적인 치료법은 수술이다. 그런데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중년의 의사가 은퇴하면 대를 이을 후배의사가 없다. 밤샘 수술이 많고 돈은 적게 벌고, 소송 위험도 커지고... 누가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를 선택할 것인가. 필수의료 살리기는 이제 국가의 중요 과제다. 내 가족을 위해서라도 대장항문외과의 소멸을 막아야 한다. [사진=게티이미지]

매일 새벽 2~4시에 실려 오는 응급환자... 남들이 곤히 자고 있는 시각에 온몸에 비상벨을 켜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들이다.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를 돌보는 이들은 피곤과 졸음을 느낄 새가 없다. 고난도 수술이 많아 의료사고의 위험성도 이들을 짓누른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도 거액을 배상할지도 모른다. ‘삶의 질’은 이미 급격히 떨어져 있다. 다른 의사들에 비해 돈도 적게 번다. 이러니 젊은 후배들이 대장항문외과 전공의를 기피한지 오래다. 한창 일하던 전문의는 번아웃을 느끼고 떠나고 있다. 갑자기 장이 터져서 한밤 중에 병원을 찾아도 수술할 의사가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대장항문외과 사라지나... 중년 의사들 떠나면 대 이을 후배 없어

요즘 대장항문외과 소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전공의, 전문의들이 자꾸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중년 의사들이 떠나면 대를 이을 후배들이 거의 없다. ‘대장항문외과’라고 해서 대장이나 항문, 치질(치핵) 수술만 떠올리면 안 된다. 생명과 직결된 각종 위험한 수술을 담당하고 있다. 갑자기 발병하는 맹장염(충수염)도 이들의 전문 분야다. 맹장염은 흔하지만 수술이 늦으면 매우 위험하다. 염증이 생긴 충수의 절제 시기를 놓치면 복막염으로 악화되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급성 충수염은 수술 후 수일 내 회복되는 단순 충수염부터 천공(구멍) 및 복강·골반 속으로 고름, 뱃속으로 대변이 퍼져 복막염·패혈증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까지 다양하다. 복강 내 장기의 염증, 천공, 폐색, 파열에 의해 생명을 위협하는 ‘급성복증’의 응급수술 비율도 높다.

대장항문외과는 왜 소멸 위기에 놓여 있을까?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수술이 전문인 외과는 기피과 중의 하나다. 특히 야간수술이 잦은 대장항문 분야는 거부감이 더 심하다. 외과 가운데 자정~새벽 4시 사이에 이뤄진 밤 응급수술 분석결과 대장항문외과 담당 비율이 81%로 압도적이었다. 대한대장항문외과학회 자료에 따르면 외과의사 중에 대장항문외과를 선택한 전임의 수는 2022년 45명에서 2023년 35명, 2024년 21명으로 3년 만에 절반이 줄었다. 젊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현상이 심화되면서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는 이제 배출 자체를 걱정할 처지다. 대한외과학회의 분과 전문의 중 대장항문 전공자는 한 자리수에 불과하다.

생명 살린다는 자부심에 지원했지만... 돈 적게 벌고 휴일에도 응급호출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는 생명을 살린다는 자부심에 지원하지만 이내 실망하고 만다. 턱없이 낮은 수가(건강보험으로부터 받는 돈)로 개원이 어렵고 대학-종합병원에 재직하고 있어도 고충이 너무 많다. 수술실에 많은 인원이 투입되는 데도 병원에 벌어다 주는 돈이 다른 과에 비해 적다 보니 병원 경영진이 의사 충원에 소극적이다. 이는 전문의 부족으로 이어져 휴일에도 집에서 응급호출을 기다리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불편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

맹장수술(충수절제술)의 사례를 보자. 단순 충수염을 복강경 수술로 치료하면 약제, 재료비, 인건비 등을 합하면 적자가 불가피하다.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낮은 수가 탓에 맹장수술을 하지 않는 종합병원(2차병원)이 늘고 있다. 대학병원들마저 의료진 부족으로 환자를 받아주지 않는 끔찍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최근 복강경을 이용한 직장암, 결장암 수술이나 진행성 대장암, 재발성 직장암 등의 고난도 수술과 10시간 이상의 수술이 늘고 있다. 하지만 수술을 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다. 따라서 수술의 난이도와 합병증-수술 후 관리, 의료진의 숙련도 등을 고려한 차별화된 수가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도... 과도한 소송 부담

고난도 수술이 많다 보니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의 위험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 데도 과도한 법적 소송에 휘말려 의료진의 진을 빼놓기 일쑤다. 개원의는 망하기 십상이다. 선배들의 소송을 지켜보는 젊은 후배들은 “차라리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며 일반의로 피부-미용 분야를 선택하기도 한다. 최근 산부인과 중 산과 의사들의 소송 스트레스가 집중 거론되면서 정부의 소송 비용 지원 액수가 커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장항문외과도 필수의료의 최전선에 있다. 산과처럼 밤을 새는 야간 수술 비율이 높고 고난도 수술이 많다. 의사들이 법적 소송에 신경을 덜 쓰고 환자 치료를 최고 가치로 여기며 소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응급환자 중 40%가 중환자.... 내 가족 위해서라도 대장항문외과 지켜야

TV의 메디컬 드라마에선 긴박한 심장 수술을 하는 흉부심장혈관외과 의사가 주목받아왔다. 뇌혈관질환을 치료하는 신경외과와 함께 외과에서 대표적인 필수의료 분야다. 대중들에게 ‘필수의료 대장항문외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항문, 치질(치핵)이 떠오르지만 대장항문외과는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응급수술이 핵심이다. 대장항문외과 응급환자 중 40%가 중환자다(대한대장항문외과학회 자료). 이들이 밤을 새며 수술해야 내 가족, 이웃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식습관의 변화에 따라 대장암이 국내 전체 암 발생 1, 2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2023년 12월 발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대장암은 2021년에만 3만 2751명의 신규환자가 발생했다. 대장암의 가장 근본적인 치료법은 수술이다. 그런데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중년의 의사가 은퇴하면 대를 이을 후배가 없다. 밤샘 수술이 많고 돈은 적게 벌고, 소송 위험도 커지고... 누가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를 선택할 것인가. 필수의료 살리기는 이제 국가의 중요 과제다. 내 가족을 위해서라도 대장항문외과의 소멸을 막아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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