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초파리, 짝짓기 거부당하면 술 찾는다"

알코올도수 80도도 버티는 오리엔탈 말벌 등 자연계 술꾼들 많아

수컷 초파리는 짝짓기 상대로 거부당했을 때 알코올에 의존한다. 반면 초파리 친척 종의 암컷은 술에 취한 후 짝을 덜 까다롭게 여기고 더 많은 수컷과 성관계를 갖는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아메리카대륙에 서식하는 거미 원숭이는 브랜디에 취해본 이후로 브랜디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 원숭이는 많은 사람보다 현명했다.”

찰스 다윈이 ‘인간의 유래’(1871)에서 밝힌 내용이다. 인간과 원숭이의 유사성을 설명하면서 원숭이들이 어쩌다 한 번 술을 마실 순 있어도 좋아서 다시 마시는 경우는 없다고 지적한 것. 이는 동물 중에 인간만이 술을 마신다는 가설로 발전했다.

하지만 알코올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태계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며, 과일과 꽃의 꿀을 먹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정기적으로 알코올을 소비하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생태와 진화의 경향(Trends in Ecology and Evolution)》에 발표된 영국 캐나다 미국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이다.

많은 동물들은 술 한 잔 정도를 견디면서 알코올의 칼로리만 섭취하도록 진화했다. 대부분은 알코올의 영향을 감당하지 못한다. 하지만 일부 종은 알코올 섭취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동물과 알코올에 관한 연구 논문을 샅샅이 뒤진 끝에 일반적으로 발효 과일, 수액, 꿀을 통해 에탄올을 식단에 수용하고 적응한 다양한 종을 발견하고 “인간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논문의 주저자인 영국 엑서터대의 애나 보울랜드 연구원(생태학)은 “알코올은 인간만이 사용한다는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면서 “실제로 에탄올은 자연계에 상당히 풍부하다”고 말했다.

에탄올은 약 1억 년 전 꽃 피는 식물이 효모 발효가 가능한 달콤한 과일과 꿀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지구상에 풍부해졌다. 에탄올함유량(ABV‧알코올도수)은 일반적으로 1~2%로 낮지만 잘 익은 야자열매의 경우 10%까지 되기도 한다..

서아프리카 기니 남동부에서는 야생 침팬지가 라피아 야자 수액을 폭식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또 중미 파나마에 서식하는 거미 원숭이는 에탄올이 함유된 노란색 열대과일인 몸빈(mombin)을 먹는데, 이 열매에는 1~2.5%의 알코올이 함유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알코올 소비가 취기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남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는 대형 열대과일인 마룰라 열매를 먹다 취한 코끼리와 개코원숭이부터 스웨덴에서 발효된 사과를 씹다가 나무에 머리가 낀 말코손바닥사슴(엘크)까지 술 취한 동물 사례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이들 동물이나 과일의 알코올 도수 측정이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알코올에 대한 내성이 대단한 동물들도 많다. 동남아에 서식하는 붓꼬리나무두더지는 “엄청난 에탄올 소비”를 자랑하지만 술에 취한 경우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연구진은 “이 나무두더지가 취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는 불분명 하다”고 밝혔다.

발효 식품을 정기적으로 섭취하는 동물은 알코올 대사가 빨라 최악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에탄올을 자주 접하지 못한 동물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울타리 및 기타 구조물에 충돌해 죽은 애기여새(Cedar waxwing)들을 조사한 결과 상록활엽수인 브라질페퍼나무의 잘 익은 열매를 먹은 후 음주 상태로 날아가다 사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울랜드 연구원은 “생존 투쟁이 벌어지는 환경에서 음주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코올의 가장 두드러진 효과는 곤충에서 발견된다. 수컷 초파리는 짝짓기 상대로 거부당했을 때 알코올에 의존한다. 반면 초파리 친척 종의 암컷은 술에 취한 후 짝을 덜 까다롭게 여기고 더 많은 수컷과 성관계를 갖는다. 초파리는 또 에탄올이 풍부한 음식에 알을 낳아 기생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이달 초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의 에란 레빈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중동지역에 서식하는 오리엔탈말벌이 아무런 부작용 없이 알코올을 무제한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논문의 주저자인 소피아 부쳅티 박사는 “오리엔탈말벌은 알코올 도수 80도의 에탄올 용액을 섭취해도 죽거나 이상행동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구진의 일원인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CF)의 매슈 캐리건(해부생리학)은 “초파리, 마다가스카르손가락원숭이(아이아이), (동남아에 서식하는) 늘보 로리스를 제외하면 동물이 에탄올 함유 식품을 선호하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 “다음 단계로 야생의 동물이 에탄올 함유 식품을 선호하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링크(https://www.cell.com/trends/ecology-evolution/fulltext/S0169-5347(24)00240-4)에서 해당 논문을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댓글 쓰기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