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몸에 멍 있다고 6개월 빼앗아가?"...가정폭력으로 오인한 멍의 정체는?
아기 몸에 든 멍 때문에 부모와 분리 조치…초기 검사에서 놓친 질환의 징후
영국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아기의 몸에 멍이 있다는 이유로 6개월 동안 부모로부터 분리 시킨 사건이 소개됐다. 멍 하나로 가정폭력을 의심하고 아기를 '빼앗아 간' 지역 보건위원회의 처신이 많은 부모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카디프에 사는 한 부모의 사연으로 영국 웨일즈온라인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이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나고 몇 달 후 정기 가정 방문이 실시됐다. 이때 아기의 아래쪽 갈비뼈 부근에 2.5cm 크기의 멍이 든 것이 발견됐다. 조사원은 이에 우려를 제기했지만, 부모는 왜 아기의 몸에 멍이 들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플라스틱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혹은 실수로 아기를 너무 세게 안아 생긴 것 같다고 답했다.
이틀 후 카디프 앤 베일 보건위원회의 소아과전문의가 방문 아동보호 의료서비스를 실시했고 2.5cm의 초록색 멍 안에 1.5cm 크기의 더 진한 멍이 생겨 있음을 확인했다. 해당 의사는 장난감을 정상적으로 가지고 놀거나 위로 굴러 건강한 아기의 흉벽에 심각한 멍이 생기는 일은 “흔치 않다(unusual)”며 “확인된 부상이 비우발적 상해라면 매우 우려스럽다”고 보고했다. 사실상 부모를 가정폭력이나 제대로 돌보지 못한 상황으로 넘겨 짚은 것이다.
의사의 방문이 있고 며칠 후 베일 오브 글래모건 위원회는 카디프 가정법원에 아동 보호명령을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아동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과 거주지 결정 권한은 위원회가 갖게 된다. 또한 아기를 부모에게서 분리해 다른 가족이 돌보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의 유일한 근거는 아기 몸에 있던 멍 자국이었다. 판사는 임시 보호명령을 승인하고 소아과전문의가 아기를 검사하도록 했다.
초기 검사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혈액응고질환 의심 징후 놓쳐
이후 아기의 상태 검사를 실시한 소아과전문 의사는 "왕립 소아과 및 아동 건강 대학에서 권장하는 대로 아기의 초기 혈액 검사 및 검진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아 출혈이나 응고 장애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아기의 몸에 생긴 멍이 “우발적 부상이 아닌 그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며 유모차에 아기를 태울 때 안전바에 부딪히며 생긴 멍일 수 있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초기 검사에서 아기의 혈중 단백질 수치는 정상 범위보다 약간 낮았다.
5개월 가까이 아기가 돌아오길 기다렸던 부모는 이 의사의 보고서를 근거로 소송을 기각해 달라고 신청했다. 법원에서 임명한 사회복지사 CAFCASS(아동 및 가정 법원 자문·지원 서비스) 후견인 또한 부모에게 제기된 소송의 쟁점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며 부모의 신청 사유를 뒷받침했다.
처음에 판사는 위원회가 치료 명령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음이 명백하지 않다며 사건을 기각하지 않았고, 그 대신 혈액 검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이후 혈액 전문의가 검사 결과를 분석해 아기가 경미한 폰빌레브란트병(von Willebrand diseas) 징후를 보이며, 경계성 출혈경향(borderline bleeding tendency)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보고서 이후 위원회는 아기 몸에 든 멍이 부모의 부적절한 돌봄으로 인한 것임을 증명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보호명령 신청 철회를 요청했다. 사회복지사 또한 부모에 대한 양육 평가 결과를 ‘매우 긍정적’으로 내놓았다.
아기가 부모와 떨어진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이루어진 최종 심리에서 판사는 부부에 대해 약물 남용, 가정 폭력, 분노조절 문제가 있다는 우려가 없으며, 아이를 양육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사건 중 아기를 돌보았던 가족이 아기의 몸에 생긴 멍 자국을 기록해 둔 자료를 토대로, 아기가 보통 아이보다 쉽게 멍이 든다는 점도 확인했다.
판사는 “이 절차가 부모와 가족 전체에 얼마나 큰 부담을 주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위원회의 기각 신청을 승인하고 아기를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유전자 변이로 발생하는 유전출혈질환, 폰빌레브란트병
폰빌레브란트병은 유전성 혈액응고질환으로, 혈전 형성을 돕는 특수 단백질인 폰빌레브란트 인자가 너무 부족하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혈소판과 혈관 사이의 상호작용이 저해되어 발생한다. 성별에 관계없이 나타나며, 대략 1만 명 중 1명 빈도로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응고인자가 부족해 지혈이 잘 되지 않아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멍이 들고, 한 번 생긴 멍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폰빌레브란트병 환자는 주로 소화기계와 비강에 출혈이 생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코피를 자주 흘리고, 피부에 멍든 자국이 많으며, 외상이나 수술, 월경, 출산으로 과다 출혈이 일어날 수 있다. 경증인 경우 평소 특이 증상이 없다가 다치거나 수술 후 지혈이 되지 않는 등의 증상이 발생해 진단되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