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는 위고비 구하는 통로?...진짜 아픈 환자는 약 못구해 '발동동'

비대면진료 전면 허용 이후 비만-탈모약 등 비급여약 처방 성행

약국에 출시된 위고비. [사진=뉴스1]
올해 2월부터 전면 확대된 비대면진료가 '위고비' 등 비만약과 탈모약 같은 비급여 약을 타는 용도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정작 필요한 환자들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거나 약을 수령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29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의사 집단행동에 대응해 정부는 그간 의원급 의료기관과 재진환자 중심으로 이뤄지던 비대면진료를 전면 확대했다. 병원급 의료기관을 포함한 모든 종별 의료기관에 개방하고, 의사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경우 초·재진 모두 비대면진료를 실시할 수 있게 변경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현재 온라인 플랫폼이 전방위로 비급여 진료를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최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전면 허용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의협은 "비대면 진료 온라인 플랫폼들이 각종 광고, SNS, 인플루언서 등의 홍보활동을 통해 환자들의 비대면 진료 이용을 부추기고 있다"며 "정작 대면진료를 통한 재진환자 중심의 필수 진료가 이뤄지기보다는 초진으로 탈모, 다이어트, 여드름 등 미용 관련 비급여 진료 유도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국내 출시된 GLP-1 계열 비만약 위고비가 남용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의협은 "주사형 비만치료제인 위고비는 같은 성분의 당뇨약보다 고용량의 주사제다"며 "흔한 부작용으로 담석, 탈모, 소화불량 등을 제시하고 있고 드물게 췌장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어 BMI(체질량지수) 기준 등을 통해 처방해야 하는 전문의약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상 환자가 아닌 소비자들이 전문의약품을 손쉽게 취득해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비대면진료 앱에는 위고비를 구매할 수 있는 약국과 가격이 함께 표시된다. 사진은 나만의닥터. [사진=장종태 의원실 제공]
실제 닥터나우, 나만의닥터 등 비대면진료 앱에서는 지역별로 위고비를 비롯한 다이어트 약을 구매할 수 있는 약국과 가격이 함께 표시된다. 플랫폼을 활용한 비대면 진료는 원하는 진료 과목을 선택한 뒤, 주민등록번호와 진료 희망 시간, 증상 등을 입력해 제출하면 선택한 시간대에 의사에게 진료 상담 전화가 연결돼 비교적 손쉽게 처방전을 받을 수 있다. 각 플랫폼 대표 등은 제휴 의료기관에 오남용 방지를 당부하고 있지만 의료기관은 위고비 처방을 의사들의 판단에 맡기고, 약국에서 손쉽게 약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이미 위고비 이전에 열풍을 일으킨 삭센다도 최근 비대면 진료를 통한 처방이 급증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UDR) 점검 중 비대면 진료로 삭센다를 처방한 건수는 지난해 12월 183건에서 올해 9월 3347건으로 18.3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진짜 환자는 이용에 불편...임산부가 입덧약 받으러 23km 이동

이처럼 비급여 약 처방 용도로 비대면 진료 앱이 이용되고 있지만 진짜 아픈 환자들은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비대면진료 처방 약을 받기 위해 평균 4.5km 이상 이동하거나, 약을 수령하지 못해 처방 약을 적시에 복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가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된 보건복지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비대면진료를 이용하는 비율은 평일 주간 58.4%, 휴일 및 야간 41.6%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일 주간 비대면진료 후 약 수령 이동거리가 4.55km, 약 수령 소요시간은 3시간30분이었다. 휴일 및 야간에는 약 수령 이동거리가 4.77km, 약 수령에 10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2시간 이상 소요됐거나 약 수령에 실패하는 비율이 평일 주간은 21.9%, 휴일 및 야간은 34.3%였다. 특히 야간(전날 오후 6시~다음날 오전 8시) 시간 약 수령률은 33.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추석 연휴 중, 입덧 증세 악화로 처방 의약품이 필요했던 산모가 가정의학과 진료 후 약을 수령하기 위해 8개의 약국과 통화를 하고 22.9km를 이동해야 했던 사례가 있었다. 또한 밤 10시경 자녀의 소아천식 증상 악화로 급하게 네뷸라이저를 통한 흡입 투여를 위해 살부타몰황산염이 필요한 상황에서, 비대면진료 후 13개 약국에 일일이 전화를 했으나 약 수령에 실패한 사례도 있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선재원 대표(메라키플레이스)는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야간 및 휴일에 비대면진료 허용으로 진료 접근성은 크게 향상되었으나 약국 접근성이 낮아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 실효성이 크게 저해되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선 대표는 “정부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약 수령에 어려움이 큰 휴일 및 야간에 한정해 약 재택 수령을 즉각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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