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 몸에 달린 기계 떼줘요”... 존엄사 앞둔 아내, 남편의 생각은?
[김용의 헬스앤]
“온갖 기계(의료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죽어가는 내 모습이 싫어요. 죽는 날까지 가족들에게 편안하게 보이고 싶어요.”
야윈 아내의 손을 잡은 남편은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오랜 투병으로 지친 아내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70대 초반의 아내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연명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한 것이다. 노인이라 하기엔 아직 ‘젊은’ 아내가 긴 투병생활을 하게 된 것은 뇌졸중 때문이었다. 뇌의 혈관이 막혀서 뇌 조직이 괴사하는 뇌경색이 찾아온 것이다. 발병 초기 대처가 미흡한 것이 큰 후유증을 몰고 왔다.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혈관 상태가 심각했다. 한쪽 몸 마비, 시력 장애 등도 중증이었다. 아내는 지금 임종을 앞두고 있다.
품위 있는 ‘마지막’...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병상에서 죽음을 예감한 말기 환자들 가운데 ‘품위 있는 마지막’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같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생명 연장보다는 평온하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다. 환자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다. 지난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이런 판단은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이 법은 5년이 지나면서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환자의 몸에서 의료장비는 떼어내도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스위스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허용되는 안락사와는 엄연히 다르다. 이들 국가도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안락사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의사가 직접 치명적인 약을 주입하면 적극적 안락사,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가 복용하면 조력자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도 안락사 도입 움직임이 있지만 연명의료결정법부터 더 견고하게 다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꺼내기 힘들었던 죽음에 대한 논의... 이제 중년들도 준비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정착 단계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꺼내기 힘들었던 죽음에 대한 논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은 건강하더라도 노년의 임종 과정에서 소생 가능성이 없을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지난 6월까지 244만1805명이나 됐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시스템에 등록한 사람이 2018년 10만529명에서 지난해 57만3937명으로 5.7배에 이르는 등 갈수록 늘고 있다. 40~50대도 많아 일찍부터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해만 연명치료 중단 환자가 7만720명이나 됐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첫해인 2018년의 2.2배다. 전체 사망자 5명 중 1명은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있다. 환자 중 절반 정도는 의식이 있을 때 본인이 “연명치료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다.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하거나 병원에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가 있어야 한다. 사전의향서도 없고 환자의 의식도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할까? 전문의 2명이 ‘임종 과정’이라고 진단하고, 환자 가족 2인 이상의 진술이나 환자 가족들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간병 문제와 맞물린 연명치료... 가족들의 고통은?
최근 암, 심장-뇌혈관질환, 치매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도 깊어지고 있다. 간병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국가 핵심 과제다. 온몸에 의료장비를 주렁두렁 달고 간신히 생명만 연장하는 말기 환자를 보면 품위와 존엄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다. 오랜 간병에 지친 가족들은 환자와 나누었던 소중한 추억도 옅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생명만 연장하는 인공호흡기 설치 등 연명치료에 드는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의식 없는 환자와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데 치료비는 계속 들어간다.
가족 사이의 신뢰와 소통은 연명치료 중단 과정에서도 꼭 필요하다. 미리 사전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더라도 가족과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 병원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해야 할 때 환자의 의식이 없는 경우 일부 가족이 강하게 반대하면 실행이 쉽지 않다. 사전에 가족들을 이해시키고 충분히 교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건강할 때 부부, 자녀 간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하는 게 좋다. 사전의향서 작성이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라는 점도 강조할 수 있다.
“연명치료 안 받겠다”...부부 사랑, 가족 사랑 녹아 있다
어린이집, 초등학교는 갈수록 줄고 요양시설은 늘어나는 시대다. 남의 일처럼 여겼던 웰다잉(Well-Dying)이 이제 나의 일이 됐다. 지금 중년 부부들은 양가 부모님들의 간병 문제로 고민할 때다. 머지 않아 내가 간병의 대상이 되어 자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앞에서 사례로 들었던 70대 부부는 이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둔 사람들이다. 그래도 아내는 남편이 주저할까봐 다시 “연명치료 안 받겠다”고 당부했다. ‘연명치료 중단’ 말 속에는 부부 사랑, 가족 사랑이 녹아 있다.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진작에 했어야 합니다만 이제라도 다행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