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골수채취 놓고 갈라진 의사들
의사단체들 "불법이다" vs 의대교수들 "가능하다"
간호사의 골수채취(골막천자) 가능 여부를 놓고 의사사회가 분열하고 있다. 의사단체들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고 주장하는 반면, 대학병원 교수들과 전문학회 등은 전문간호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일부 젊은의사들은 대법원 3심 변론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간호사의 골수채취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전한 서울대 의대 교수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의협) 중앙윤리위원회 징계를 요구하는 중이다.
지난 8일 아산사회복지재단(서울아산병원)의 의료법 위반에 대한 상고심이 대법원에서 열렸다.
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 종양내과 등은 지난 2018년 4월부터 11월까지 종양전문간호사에게 골수 검체 채취를 위한 골막 천자를 하도록 해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골막천자란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 빈혈 등 혈액질환을 진단하기 위해 골수가 들어 있는 골반뼈를 굵고 긴 바늘로 찔러 골수조직을 채취하는 검사다.
봉직의(페이닥터) 단체인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지난 2018년 병원과 사건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병의협은 의협 산하단체이기도 하다. 이어 진행된 1심 재판에서는 서울아산병원에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동부지방법원 재판부는 의사가 종양전문간호사에게 골수채취(골막천자)를 지시 또는 위임하는 것이 의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A병원 재단에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골수채취를 행한 간호사가 종양전문간호사 자격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는 종양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는 간호사인 자격을 인정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비록 의사의 지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직접 할 수 없는 것은 전문간호사도 다른 간호사와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또, 해외에서는 전문간호사가 골수채취를 수행한다고 해도 의료법령이나 의료체계가 서로 상이하므로, 국내에서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서울아산병원(아산사회복지재단)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심이 진행됐다.
상고심 변론에서는 검찰 측과 피고인인 병원 측 참고인이 각각 나와 의견을 밝혔다. 검찰 측 참고인으로 나온 병의협 부회장(소화기내과 전문의) 등은 골수채취(골막천자)가 동의서를 받고 마취하는 것까지 모두 검사 과정이기에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이며, 환자에 따라 호흡 부전이 올 수 있기에 의사가 판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복지부에서 인증한 전문간호사라고 하더라도 허용 업무 범위가 간호사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반대로 병원 측은 숙련된 전문 간호사라면 검사할 수 있다는 혈액학회의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병원 측 참고인으로 나온 서울대 의대 모 교수는 “골수채취는 간호사냐 전문간호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숙련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가 전문간호사에게 골수 채취 위임도 가능하고, 복잡한 절차도 아니기에 의사가 감독할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구가톨릭대 의대 소속 모 교수도 검사 자체가 의사의 전문적 지식이나 판단이 필요하지 않고, 충분히 숙련됐다면 간호사도 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또한 본인의 투병 경험을 들어 전담간호사에게 골수채취를 받을 때, 불편함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선고기일에 대해서는 추후 지정해 개별 통보할 것을 밝혔다.
판결 앞두고 갈등 고조...의사단체-젊은의사, 서울대 의대 교수 의협 윤리위 회부 요구
이런 가운데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의료계 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이 대표로 있는 미래의료포럼은 “서울대 교수가 말한 숙련도라는 개념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대법원에서의 발언을 통해 교수 스스로도 숙련도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며 “오로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면허 체계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교수를 의회 내부 자정 기구인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의사 회원 자격에 대해 징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채동영 의협 홍보이사 등이 중심이 된 의협 젊은의사 정책자문단도 “개인의 편의와 병원의 이익 창출만을 위해 의료법에서 규정한 면허별 업무 범위와 역할 및 한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며 해당 교수 발언을 중윤위에 배심하고 징계할 것을 촉구했다.
반대로 교수들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면서도, 해외 사례를 들며 간호사 위임 업무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한 서울 소재 대학병원 교수는 “해외에서는 골수채취를 누가 하느냐 보면, 전문성이 있는 간호사에게 위임하는 일이 적지 않다. 세계적인 추세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언제까지 의사에게 놔둘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재 인원이 없는 필수과 상황 등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에 대한 환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장(백혈병환우회 공동대표)은 "전문간호사 수련과정에서 교육 정도가 명확하지 않고, 의사만 가능한 업무가 맞다면 환자 안전 차원에서는 우려된다"며 "다만, 만약에 전문간호사 교육과정에 밀도있는 교육이 충분히 있고, 일정한 수련과정을 거쳐서 의사의 지시 아래 충분히 골수천자를 할 수 있다면 사회적 논의를 거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판결은 내년 시행 예정인 간호법에 진료지원업무 범위를 하위법령으로 규정하도록 하는 것과 연관되어 더욱 이목을 모으고 있다. 판결 결과에 따라 골수채취나 그 외 모호한 경계선의 행위들이 의사 지시나 위임 하에 전문간호사가 하는 것이 가능할지, 아니면 반드시 의사가 해야하는 업무로 규정될지 나누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