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보다 더 좋은 직업 있나요?”... 이공계 위기 20년, 언제까지 지속될까?

[김용의 헬스앤]

전국의 이과 수재들이 명퇴 걱정 없이 평생 일할 수 있는 의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가 의사 면허의 ‘가치’를 한껏 높여준 것이다. 평생 면허에 대한 욕구는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수의사로 확대된지 오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늘 저희 삼성전자 경영진은 여러분께 먼저 송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삼성의 위기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삼성은 늘 위기를 기회로 만든 도전과 혁신, 그리고 극복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처한 엄중한 상황도 꼭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겠습니다. 무엇보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습니다.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지난 8일 삼성전자 DS 부문장 전영현 부회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고객과 투자자, 그리고 임직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은 ‘사과문’ 겸 재도약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을 반성하고 기술경쟁력을 복원하여 삼성전자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이공계 위기20년 그 후... 의대 열풍은 더 심해졌다

의대 열풍과 맞물려 ‘이공계 위기’가 대두된지 20년 이상이 지났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시발점이었다. 기업의 ‘구조조정’ ‘명퇴’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회사원의 정년이 무의미해졌다. 40대나 50대에 정년퇴직한다는 ‘사오정’, 50대~60대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이라는 뜻의 ‘오륙도’라는 말도 이때 나왔다. 수많은 40~50대 가장들이 눈물을 머금고 사표를 썼다. 일부는 식당-주점을 차렸다가 노후자금인 퇴직금을 날리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고교 최상위권 졸업생들이 의대보다는 이공계를 선호했다. 의대에도 우등생들이 진학했지만 이공계 열풍은 거셌다. 70~90년대 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 물리학과, 컴퓨터공학과 등은 고교 1등들이 지망하던 이른바 인기과였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삼성전자, 금성사(LG전자) 등에 입사, 지금의 전자강국 토대를 마련했다. 과거 일본의 소니, 도시바의 OEM(주문자 상표 제품의 제조) 생산기지였던 한국이 반도체, 스마트폰, TV-냉장고-세탁기 등 가전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질주하는 디딤돌을 놓은 것이다. 미국 가구의 절반 정도가 삼성전자, LG전자의 가전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공계 인재들의 노력 덕분이다.

월급쟁이의 한계 실감... 명퇴 걱정 없는 평생 면허 인기 절정

1등 공대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낸 것은 외환위기였다. 후배들은 ‘사오정’ ‘오륙도’ 우스갯소리의 대상이 된 선배들을 보면서 월급쟁이의 한계를 실감했다. 전국의 이과 수재들이 명퇴 걱정 없이 평생 일할 수 있는 의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가 의사 면허의 ‘가치’를 한껏 높여준 것이다. 평생 면허에 대한 욕구는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수의사로 확대된 지 오래다. 문과생들은 고위 관료의 꿈을 버리고 변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로스쿨로 몰리고 있다. 역시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종이다.

20년 간의 의대 열풍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과거 의대 우등생이 지망하던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의료는 쇠락하고 안전하게 돈 벌 수 있는 전공이 인기를 얻고 있다. 식습관의 변화로 심장병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 흉부외과는 대(代)가 끊길 위기다. 국가 최대 과제인 저출산 현상이 나아져도 문제다. 산과(산부인과) 의사가 사라지고 있어 고위험 분만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도 양수가 터진 임신부가 병원 곳곳에서 이송을 거절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휴일에도 비상 호출에 대비하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도 거액을 배상해야 하는 환경이 필수의료 의사들을 짓누르고 있다.

더 심해지는 이공계 위기... 정년 채워도 20~30년의 노후 막막

‘이공계 위기’는 요즘 더 심해지고 있다. 의대 증원 2000명이 불거지면서 공대는 의대로 가는 ‘임시 정거장’이 되고 있다. 공학 연구자를 꿈꾸며 소신껏 공대에 입학한 2~3학년은 물론 이미 연구활동 중인 공대 박사 졸업생도 의대 입학을 위해 고교 수험서를 다시 꺼내고 있다. 공대 졸업생은 운 좋게 60세 정년을 채워도 남은 20~30년의 노후가 막막하다. 하지만 의사는 70세, 80세까지 환자를 보며 노년에도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공대 입학 최상위권 자리가 전국 의대를 한 바퀴 돈 학생들로 채워지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위기가 이공계 인재 부족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홈페이지의 글을 보면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도 다시 들여다 보고 고칠 것은 바로 고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이라며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이라고 강조했다.

설 자리 없는 중년의 이공계 인재들... ‘이공계 살리기의 출발점은?

글로벌 전자기업의 버팀목인 ‘기술과 품질’은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만들어낸다. 이들이 나이 들어도 관료화되지 않고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치열하게 토론하여 문제점을 개선하는 과거의 전통을 살려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사오정’ ‘오륙도’를 감내하던 선배들을 보고 자란 세대들이다. 고용 불안이 마음 한 켠에 늘 자리 잡고 이들을 옥죄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과 달리 직장에서 퇴직하면 재취업이 쉽지 않다. 고교 1등 실력에도 의대를 가지 않았던 중년의 공대 졸업생은 자신보다 성적이 뒤처졌던 의사 친구가 부럽다고 했다. 노동 유연성, 청년 취업, 40세 이상이 많은 조직... 나이 든 이공계 인재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 ‘이공계 살리기’는 축 처진 이들의 어깨를 보듬어 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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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 2024-10-16 16:25:45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90년대 만큼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고, 새로운 경제성장동력이 없으니까 장기적으로 경기침체가 왔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의사같은 전문직으로 몰리는 겁니다. 김용 아저씨, 당신이 정말 대한민국 이공계가 걱정된다면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하고, 인공지능/로봇 같은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성장동력이 될 산업분야를 육성할 방안을 고민해보세요. 의협한테 돈 받아처먹고 이딴 칼럼 쓰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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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 2024-10-16 16:23:03

      그랬던 것이 의사들이 모든 보건의료업무를 독점하고, 심지어 간호사, 치료사, 영양사, 약사, 한의사 등등 다른 보건의료직들이 고생하는 것 모두 무시하고 대한민국 보건의료분야가 발전한 것은 오직 의사들이 능력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선전하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의사가 최고 직업이라고 착각하게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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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 2024-10-16 16:19:09

      90년대에는 고려대, 연세대 공대가 지방 어지간한 의대보다 입학점수가 더 높았죠. 왜 그랬을까요? 일단 그때는 지금처럼 의사들이 보건의료분야를 모두 독점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때는 동네에 병원들도 별로 없었고, 사람들이 아프면 한의원도 갔었고, 약국에서도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으니까 굳이 크게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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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 2024-10-16 16:13:01

      의사 면허 따면 실력 고만고만해도, 맨날 똑같은 처방전 발행하고, 1분도 진료 안하면서 처방전 1장만 발행해도 1만원 이상씩 수입이 생기니까, 일부 의사들이 쉽게 취업하고, 쉽게 병원 개업해서 잘 먹고 사니까 사람들이 의대 가고 싶어서 환장하는 거죠. 심지어 자기 전공 때려치우고, 피부 미용 시술하는 병원 개업해서 시술 몇 번만 해도 억대연봉 받으니까 사람들이 모두 의대 가려고 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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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 2024-10-16 16:10:38

      의협놈들과 의대교수들이 의사들 기득권 지키느라 지난 20년간 의료수요는 늘어났지만 의대증원 못하게 막아서 의사들이 오늘날 이렇게 특권의식에 찌들어 있는 걸 대한민국 국민 중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의대정원 늘려서 의사들도 엔지니어 못지 않게 경쟁하고 능력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누가 지금처럼 의대 가고 싶어서 환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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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 2024-10-16 16:06:20

      의대증원 저지 위해 코메디닷컴 칼럼 쓰는 인간들이 의협한테 사주받고 또 말도 안되는 칼럼 처쓰기 시작하는구나. 김용 아저씨, 작가인지 아님 의협한테 돈 처먹고 이딴 글 쓰는 글쟁이인지 모르겠지만 왜 뜬금없이 이공계 걱정을 처하시는데요? 의대증원이 이공계 교육 망가트릴 거라구요? 의대가고 싶어서 환장한 인간들이 일시적으로 의대가겠다고 몰려들지 모르겠지만 의대정원 늘려서 의사도 경쟁하고 능력 있어야 먹고 산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의대입시 광풍 점점 사라질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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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s1*** 2024-10-15 20:58:30

      평생의사의 경고음은 의대정원을 늘려 의사도 경쟁하여 실력이 없으면 도태되 노동판이나 노숙자로 갈수 있다는 걸 알려 주는것입니다. 의사만 십년씩 공부하는게 아니다. 니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전기기술사나 소방기술사, 화공품 관리사, 하수구 고치는 사람도 십몇년씩 해야 관련 자격증 딸 수 있고 너그들만 목숨을 구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일례로 전기기사가 맘만먹으면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 갈수 도 있다. 당장 아픈사람이 찾으니까 의사가 신인줄 착각하나? 급하면 하수구 뚫는 사람 찾으면서...쓰레기나 하수구 한번 뚫어보고 진찰해 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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