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못 걷고 못 삼켜"...뇌에 노폐물 쌓여가는 아이, 무슨 병이길래?
체내 노폐물 제거하지 못하는 유전성 질환으로 치매 환자 유사 증상 보이는 아이 사연
희귀 유전성 질환으로 걷고 말하는 능력을 잃어 가는 어린 소녀의 사연이 소개됐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주 브리지타운에 사는 엠마 오스틴(7)은 두 살이 넘어서까지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증상이나 징후는 전혀 없었다. 기고, 걷고, 말하는 등 발달이 잘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두 살 반이 됐을 때 아이는 신발을 신거나 수저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엠마의 부모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지만, 의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언어 지연으로 시작해 약간의 운동 지연이 생긴 후 배변을 가리지 못했고, 잠을 잘 못 자며, 갑자기 분노를 터뜨리는 등 점점 증상이 심해졌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엠마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던 중 차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아이는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황한 엠마의 엄마 커스티는 곧장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엠마가 CLN2 바텐병(CLN2 Batten Disease)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엠마의 몸에는 뇌와 척수에서 노폐물을 제거하는 효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TPP1 유전자가 결핍되어 있다. 이로 인해 세포에 노폐물이 점차적으로 축적되어 일부 알츠하이머병 환자처럼 점점 인지 기능이 저하된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기 10만 명 중 약 3명이 바텐병에 걸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줌(Zoom)을 통해 진단을 전한 의료진은 엠마가 말하고, 걷고, 보고, 삼키는 능력을 점차 잃게 될 것이며 치료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후 커스티는 일을 그만 두고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있다.
현재 일곱 살인 엠마는 여전히 걷고, 뛰고, 볼 수 있으며, 스스로 음식을 먹고 삼킬 수 있다. 아이의 증상이 조금이나마 호전된 건 일주일에 두 차례씩 맞는 주사 덕분이다. 엠마는 바텐병의 일종인 2형 신경세포 세로이드 라이포푸신증(CLN2)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는 브리뉴라(Brineura) 치료를 받고 있다. 해당 치료제를 2주 간격으로 뇌실 내에 주입하는 방법이다. 미국 의약품 가격비교 업체 굿알엑스(GoodRx)에 따르면, 이 치료제는 2022년 미국에서 8번째로 비싼 약으로 1회 투여 비용은 약 3만 5000달러(약 4600만원)에 달한다.
엠마의 부모는 “친구들과 함께 놀거나 놀이터에 갔을 때 엠마는 혼자 서서 아이들을 쳐다보기만 한다. 아이의 눈을 보면 “나는 왜 저렇게 못하지?”하고 궁금해하는 걸 알 수 있다”며 “커가면서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아이는 인지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엠마의 가족은 약값과 집 개조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고펀드미(GoFundMe)에서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브라질에서 진행된 임상 시험을 통해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보였지만 수익성 문제로 중단된 연구의 치료제 특허권을 구입하고 개발하기 위해 바텐병 지원 및 연구 협회(BDRSA)와 함께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유전자 변이로 세포에 노폐물 쌓이는 유전성 질환
바텐병은 뇌세포에 노폐물이 쌓이는 유전적 질환이다. 세포의 구조 및 기능에 영향을 미치며(신경퇴화), 궁극적으로 세포가 죽게 된다. 신경원성 세로이드 리포푸신증(neuronal ceroid lipofuscinosis)이라고도 한다.
원인은 CLN 유전자의 변이다. 이 유전자는 세포 노폐물을 분해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신체가 노폐물을 제거할 수 없어 세포에 쌓이게 되는 것이다. 지질(지방), 당, 단백질이 몸 전체의 세포에 쌓이게 되며,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은 뇌세포다. 쌓인 노폐물로 인해 뇌세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신경계에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바텐병은 유전성 대사 장애로, 부모가 바텐병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를 보유한 경우 발병할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상염색체 열성유전이다. 아이에게 증상이 나타나려면 양쪽 부모 모두 유전자 변이를 보유하고 물려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확인된 유형은 14개다. 각 유형의 이름은 ‘CLN(ceroid lipofuscinosis, neuronal)’으로 시작하며 뒤에 1에서 14까지의 숫자가 붙는다. 가장 흔한 유형은 CLN3(청소년 바텐병)로, 증상은 보통 5세에서 15세 사이에 시작된다.
모든 유형의 바텐병이 동일한 증상을 많이 공유하지만, 시작되는 연령은 다를 수 있다. 처음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시력 손실, 성격 및 행동 변화, 서툰 움직임이나 협응력 및 균형감각 이상, 발작 등이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지 기능(사고력 및 추론능력) 저하 △말하기 및 언어 문제(언어 지연, 말더듬, 단어나 구 반복) △떨림, 틱, 근육 경련, 근간대경련 △기억 상실(치매) △환각 및 현실감각 상실 △수면 장애 △근육 경직 △팔다리 약화 △청소년 및 젊은 성인에서 부정맥과 같은 심장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아이는 일정 기간 동안 정상적인 속도로 성장하다가 증상이 나타나며 발달을 멈추고 학습한 기술을 잃게 된다.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서 증상이 빠르게 악화된다.
매우 드물지만 성인에게서 바텐병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보통 30세 경에 시작되며, 대개 가벼운 증상을 보인다.
바텐병에 대한 치료법은 아직 없다. 의료진은 증상을 치료하고 아이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둔다. 다만, CLN2를 가진 어린이에 대해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치료제가 있다. 세르리포나제 알파(cerliponase alfa, Brineura®)라는 약을 2주 간격으로 뇌를 둘러싼 체액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이다. 이 약은 기거나 걷는 능력(보행) 상실과 같은 이동성과 관련된 증상의 진행 속도를 늦춰준다. 하지만 다른 증상을 늦추지는 못한다.
바텐병 진단을 받은 아이는 노폐물 축적으로 인해 세포가 사멸하면서 기능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증상이 점차 악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장기 기능에도 영향을 미쳐 장기 부전이 나타나게 된다. 증상이 진행되는 속도는 다르지만 결국 많은 신체 기능을 잃게 되면서 조기에 사망하게 된다. 질병 유형과 심각도에 따라 다르지만, 영유아는 증상이 시작된 후 보통 5~6년의 생존율을 보이며, 10세 경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20대 초반까지 살 수 있다. 증상이 일찍 나타날수록 기대 수명이 짧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