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책은 총력전이지만... 아기 받는 산과 의사는 사라지는 이유?

[김용의 헬스앤]

저출산 현상이 완화되어 임신부가 늘어도 걱정이다. 산과 의사 부족으로 또 다른 의료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30대 후반에 첫 임신을 했어요. 건강 관리에 바짝 신경 쓰고 있습니다.”

취업 등으로 인해 늦게 결혼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다. 고령 임신으로 시험관 시술이 증가하면서 쌍둥이 출산도 많아지고 있다. 쌍둥이의 절반 이상이 조산으로 태어난다. 쌍둥이의 조산 확률은 50%, 세 쌍둥이 이상은 90%가 넘는다. 위험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임신부가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다. 가족들도 비상이다. 아기가 건강하게 나오기 전까지 늘 조마조마하다. 그 어느 때보다 아기를 받는 산과(産科) 의사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산과 의사들은 어럽게 임신하여 출산을 앞둔 산모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도... 아기 받는 산과 의사들이 사라진다

산부인과의 핵심 분야인 산과 의사들의 고단함은 많이 알려져 있다.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지키는 대표적인 필수의료 분야지만, 다른 의사에 비해 돈도 적게 벌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 집에서 자다가 응급 연락을 받고 수술실로 달려가는 게 일상이다. 엄청난 노동 강도는 견딜 수 있지만, 의료사고의 위험성은 이들을 막다른 길로 몰고 가고 있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도 배상액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밤을 새워 산모와 아기를 돌본 끝에 겨우 마련한 집 한 채가 날아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대학병원의 유능한 산과 교수들이 줄줄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창 일할 나이인 중년의 전문의들이 사직하고 있다. 그들을 도와주던 전공의가  이탈하면서 조기 퇴직을 떠올리는 산과 교수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가뜩이나 다른 과에 비해 수가 적던 전공의마저 사라지면서 산과 교수들의 업무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산모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만으로 더 버티다간 몸과 정신이 망가질 수 있다. 고단한 일상을 지켜보는 가족들도 걱정하고 있다.

암울한 산과 의사의 미래... 분만 도울수록 손해 쌓인다. ?

퇴직 산과 의사는 평생을 일궈온 산과를 아예 떠나 전혀 다른 분야를 선택하고 있다. 가정의학과 등 다른 분야를 다시 배우고 미국 취업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산과 의사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방증이다. 7개월 전 이탈한 전공의들이 돌아올 가능성도 적어지고 있다. 차라리 일반의로 피부-미용 분야 병원에 취업하는 게 속 편하다는 것이다. 평생 응급상황, 의료사고의 압박감에 시달리기 보다는 마음이라도 편하게 의사 생활을 하고 싶다는 기본 욕구를 말릴 수도 없다.

산과 전문의들은 개원이 매우 어렵다. 동네병원이 사라진지 오래다. 저출산의 영향도 있지만 산과로는 병원 운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간이 보이는 동네 산부인과는 고유 영역인 분만을 버리고 ‘여성 전문’ 등 다른 분야를 보고 있다. 임산부를 돌봐서 건강보험으로 받는 돈(수가)이 너무 적다. 의료사고의 위험도 두렵다. 건강보험 진료에 따른 원가 보전율(100% 기본)이 산부인과는 61%에 불과하다. 분만을 할수록 손해가 쌓인다. 반면에 안과의 원가 보전율은 139%, 방사선종양학과는 252%다(국회 보건복지위 김 윤 의원-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산과의 낮은 수가를 장기간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출산 늘어도 문제... 저출산 대책과 산과 의사 지원 대책 병행해야

고군분투하던 산과 교수들마저 떠나면 누가 고위험 산모들을 돌볼 것인가? 저출산 현상이 완화되어 임신부가 늘어도 걱정이다. 산과 의사 부족으로 또 다른 의료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지금도 지역에선 출산을 앞두고 대도시 대학병원 인근에서 하숙하는 임신부들이 적지 않다. 전공의가 없으면 산과 전문의 배출이 끊길 수밖에 없다.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며 어렵고 힘든 산과의 술기를 배우는 후배들의 공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대통령실에 저출생대응수석이 생겼고 저출산 대책을 전담할 부처도 신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저출산 문제는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국가 최대 현안이다. 하루빨리 저출산 현상이 완화되어 전국 곳곳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려야 한다. 하지만 걱정도 있다. 지금도 유능한 산과 의사가 부족한데, 출산이 크게 늘어나면 누가 아기를 받을 것인가? 갈수록 고위험 분만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누가 산모와 아기를 지켜줄 것인가?

나는 이 글을 통해 저출산 대책과 산과 의사 확보-지원 대책은 같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대 증원을 크게 하더라도 산과 등 필수의료를 선택하는 의사가 없다면? 의사 숫자만 늘려서 이미 포화상태인 수도권 동네병원, 피부-미용 의원만 늘릴 것인가?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으로는 모든 필수의료의 수가를 크게 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매년 수십 조 원이나 사용하는 저출산 예산의 일부라도 산과 의사 지원 대책에 활용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건강한 아기 울음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갈수록 사라지는 산과 의사부터 붙잡아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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