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거부로 4살 아이 하늘로… "재발 방지 위한 '동희법' 제정을"

의료사고 진상 규명 우선하는 법제도 개선 필요

2019년 의료사고로 사망한 김동희 군(사망 당시 4세)의 생전 모습. 검찰은 동희 군의 사망 과정에서 의료진의 의료과실 은폐와 응급실 수용 거부 의혹을 추정 중이다. [사진=환자단체연합]
4년 전 의료사고로 사망한 김동희(당시 4세) 군 유족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환자단체들이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특히, 의료과실 은폐와 부당한 응급실 수용 거부 의혹을 받고 있어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1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 따르면, 이날 의료사고 피해자 유족 김소희(37) 씨는 4년 전 사망한 4살 아들 동희 군 사건에 대한 두 번째 형사재판 공판을 진행한다. 동희 군은 2019년 의료사고와 응급실 수용 거부로 사망했고, 이 과정에서 동희 군을 치료했던 병원과 의료진은 의료과실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동희 군은 편도선염을 자주 앓아 1년여 고민 끝에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2019년 10월 4일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이 수술을 받은 후 회복 과정에서 과출혈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서울서부지방검찰이 지난해 발표한 수사 결과에서 해당 병원 의료진의 의료과실 은폐와 응급실 수용 거부 등의 혐의를 제기한 상태다.

당시 집도의는 동희 군의 수술 후 출혈 증세에 대한 조치 미비를 숨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호자에게 상태를 알리지 않은 채 동희 군을 다시 마취하고 지혈을 위해 환부를 소작하는 재수술을 시행했다. 추가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음에도 이를 의무기록에도 남기지 않았다. 또한, 동희 군의 정확한 상태와 관리상 유의사항, 응급상황 대처법 등을 부모와 담당 의사에게 설명하지 않았고 동희 군은 이틀 만에 퇴원했다.

이튿 날 탈수 증세로 수액 치료를 받기 위해 거주지 주변 2차 병원에 입원한 동희 군은 그 다음 날 갑작스레 대량으로 피를 토하고 119 구급대에 의해 응급이송됐다. 수술을 받았던 양산부산대병원으로 먼저 이송됐지만, 병원은 '다른 CPR 환자가 있어 수용이 불가하다'고 답했다. 동희 군은 20km 떨어진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다 응급처치가 늦었다. 결국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5개월을 투병하다 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검찰은 당시 양산부산대병원 측이 부당하게 응급실 수용을 거부했다고 보고 있다. CPR을 받던 다른 응급환자는 동희 군의 이송 요청 2시간 전에 이미 응급실을 퇴실해 중환자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후속 보완수사에서도 동희 군을 담당한 양산부산대병원 전공의가 다른 당직 의사의 계정으로 접속해 진료기록을 허위 작성한 것도 확인했다.

김 씨는 "아들의 사망 3년 만에야 의사 출신 검사의 도움으로 병원의 과실 은폐 상황이 드러났고, 지난해 6월이 되어서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 제기했던 민사소송에선 번번이 의료감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판 준비와 아들 죽음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1인 시위를 병행하던 남편도 이 과정에서 사망했다. 당시 백혈병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던 남편 김강률 씨는 건강이 악화하며 2022년 세상을 등진 것이다. 이후 검찰 수사에 따라 형사사건으로 전환되며 김 씨는 올해 7월 10일에야 첫 공판을 시작했다.

김 씨는 "병원 측은 지금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의료사고 과실을 부정하고 있다"면서 "처음부터 사실을 알리고 진심 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지금까지의 법적 다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는 것만이 자식을 지키지 못한 엄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면서 "생명의 시계가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는 환자들에게 '응급실 뺑뺑이'라는 부끄러운 단어가 더 이상 언론에 나오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나서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동희 군과 아버지 김강률 씨의 생전 모습. 당시 백혈병 투병 중이던 아버지 김 씨는 동희 군의 사고 이후 재판과 시위를 병행하다 건강이 악화돼 2022년 세상을 떠났다. [사진=환자단체연합회]
의료사고 진상 규명 없인 피해자 '울분 트라우마' 심화 

동희 군의 사연은 전날인 10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개최한 '제24회 환자샤우팅카페'에서 발표됐다. 이 행사는 환자와 그 가족이 치료 과정 중 겪은 고충과 울분, 피해사례를 공개적으로 공유하며 서로 위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열리고 있다.

김 씨의 사연을 듣던 현장에선 곳곳에서 눈물을 함께 흘리는 등 안타까움을 견디지 못했다. 특히, 비슷한 사연을 겪었던 일부 참석자는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2011년 한 대형병원의 응급실 치료 지연으로 뇌출혈이 발생한 아들 기성 군을 떠나보낸 아버지 김태현 씨는 "의료사고는 의문사라고 생각된다"면서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의료사고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다.

행사에 함께 자리했던 전문가들은 김 씨와 같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울분'을 해소하기 위해선 의료사고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우선하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사고 피해자 전문 트라우마 상담가인 표지희 더플록환자안전연구소 부속 상담훈련센터장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분노와 슬픔이 '울분'이라는 특별한 종류의 트라우마라고 설명했다. 그는 "분노는 상대를 향하지만, 울분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느끼는 자책감과 답답함 등 자신을 향하는 감정"이라면서 "시간이 지나도 트라우마가 쉽게 완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피해자와 달라 별도의 전문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역시 "의료사고의 진상 조차 알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유족의 울분이 의료진에 대한 민·형사고소로 향하게 만든다"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소송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안 대표는 의료사고 분쟁조정제도가 법적 처벌을 논하기에 앞서 의료사고 진상 규명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진과 병원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사고의 원인과 경과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가 이뤄지면, 의료사고가 실제 법정공방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실제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이러한 의견을 수용해 의료사고를 해명하고 사과하는 의료진에 법적 책임을 부과하지 않는 '의사 사과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다만, 의료계가 요청하는 '의료사고 형사책임 면제 특례법'에 대해선 의료사고 진상 규명 동기가 희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도입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도적으로 의료사고 입증 책임을 의료계나 제3자가 아닌 피해 당사자인 환자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상일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역시 "왜 의료사고가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면서 "의료사고는 단순히 특정 의료진이나 의료기관의 문제가 아닌 진료시스템상 존재하는 '환자 안전 구멍'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의료사고를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제3의 상설기구를 설립해 재판이나 수사 여부에 상관 없이 의료사고를 조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희법'도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황이다. 이 법은 정당한 사유없이 응급의료를 거부, 기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다. 2021년에도 발의됐으나 끝내 처리되지 못했던 동희법은 최근 22대 국회에서 이주영 의원(개혁신당) 등이 재발의했다.

10일 제24회 환자샤우팅카페에서 동희 군의 사연을 발표한 김소희 씨. 사진=최지현 기자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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