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홀로 지키는 응급실... “너무 두렵다”

[김용의 헬스앤]

경험 많은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경력이 짧은 젊은 전문의들을 걱정했다. 한밤중에 혼자 당직을 서고 응급실 내 모든 책임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울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뉴스1]

밤을 꼬박 새며 홀로 당직을 서는 응급실에 응급환자가 잇따라 이송되어 왔다. 온몸에 피가 많이 묻은 외상 환자부터 급사 위험이 높은 심근경색증, 뇌졸중(뇌경색-뇌출혈) 의심 환자도 보인다. 몸은 하나인데 벌써 위급 상황을 호소하는 환자가 5~6명으로 늘었다. 혼자서 당직중인 의사(전문의)는 이 장면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까? 생명을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먼저 들겠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의사도 있을 것이다. 특히 경험이 적은 젊은 전문의는 “이제 모든 책임이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설 수도 있을 것이다.

전공의 사직 여파... 필수의료의 절박함 고스란히 드러나다

정부가 응급실 파견 군의관 등의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당 병원에서 2천만원까지 배상책임을 부담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파견 인력을 받은 병원들은 건당 2억원까지 보상이 가능한 단체보험에도 가입한 상태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응급실 등 의료현장에 투입된 군의관 등 대체인력은 과실로 인한 의료사고가 생겨도 배상 책임에서 면제된다. 파견 군의관 등이 낯선 대형병원 응급실 진료에 잇따라 어려움을 호소한데 따른 대책이다.

일부에선 군의관 등이 낯선 응급실에 배치되면 제대로 응급환자를 볼 수 있느냐는 회의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상황이 워낙 다급하니 군인을 진료하는 군의관까지 차출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응급실 문제가 국내 최대의 이슈가 되고 있다. 너무 꼬여 버린 의대 정원 증원 여파가 ‘응급실 대란’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이다. 추석을 앞두고 “아프지 마세요” 인사말이 유행할 정도다. 병원 상당수가 문을 닫는 명절 때 응급실 문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공의 사직으로 그동안 쌓여왔던 필수의료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드러났을 뿐이다.

30년 전에도 개선 촉구한 필수의료 문제... 지금도 그대로

7개월 전만 해도 전공의 등을 포함해 5~6명이 응급실을 지켰다. 전공의 사직 이전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교수) 1명과 레지던트 2명, 인턴 1명 등 4명 정도가 환자들을 봤다.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들이 한 명당 보는 환자가 8명 남짓이었지만, 지금은 전문의 한 명이 응급환자들을 모두 감당하고 있는 곳이 있다.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번아웃(극도의 피로)’에 빠지면 환자에게 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의사가 자신의 몸을 살피지 못하면서 어떻게 응급 환자의 몸 상태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의료계를 오래 취재해온 나는 필수의료 문제점을 반복해서 지적해왔다. 12년 전인 2012년 기자칼럼을 통해 “필수의료 문제, 빨리 개선해야”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지난주에도 이 칼럼을 통해 필수의료 의사들의 고단함을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제 ‘필수의료’는 일부 초등학생도 아는 용어가 됐다. 미디어에서 워낙 많이 다뤄 귀에 익숙해진 탓이다. 대부분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료영역이라는 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또 일이 힘들고 다른 의사들에 비해 대우도 떨어진다는 것도 아는 것 같다.

의대 정원 늘어도... 필수의료, 지역의료 원하는 의사 없다면?

의대 정원이 매년 2천명씩 늘어나도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원하는 의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늘어난 의사들을 필수의료, 지역의료에 붙들어 둘 수단은 있는 것인가. 의대 증원 이유가 지금도 수도권에 넘쳐나는 피부미용이나 동네병원을 더 늘리자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지난 2월부터 사직한 일부 전공의들은 어렵고 힘든 필수의료 전문의의 길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피부미용으로 둥지를 튼 사람도 있다. 밤을 꼬박 새면서도 의료사고에 노심초사하는 필수의료보다는 마음이라도 편하게 의사 생활을 하고 싶다는 기본욕구인 것이다.

일반 직장인도 어렵고 힘든 3D 업종은 기피한지 오래다. 대우가 좋아도 위험한 일은 싫어하는 풍조가 자리잡은 탓이다. 청년 취업난 시대에 유망한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고 있다. 의료계도 예외가 아니다. 의사들이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피하는 풍조를 탓할 것도 없다. 매일 ‘전쟁터’ 같은 의료현장에서 오래 일해도 대우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일하는 일부 의사에 비해 턱없이 적다. 개업도 어려운 편이다. 큰돈을 들여서 의원을 차려도 망하기 쉽다. 필수의료의 이런 어려움은 이미 30년 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왔지만 정책 당국의 개선 노력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응급실에 불은 켜져 있지만...

필수의료, 지역의료에 대한 수가 대폭 개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정부 지원 촉구 등은 이전부터 계속 제기된 내용이다. 일부 대형병원들은 산과(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일부 필수의료 과는 최소한의 전문의로 운영하고 있다. 수술 한 번 하면 의료진은 많이 투입되는데 의료수가가 워낙 낮아 적자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의사는 기피하고 전문의 정원도 동결되니 퇴근 후에도 편하게 쉴 수 없다. 집에서도 긴급호출(on-call)에 신경 써야 하니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험 많은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경력이 짧은 젊은 전문의들을 걱정했다. 한밤중에 혼자 당직을 서고 응급실 내 모든 책임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응급실에 불이 켜져 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 의사 모두 위험한 상황에서 진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다시 모일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30년 전에 이미 나온 필수의료 문제가 의대 증원 이슈와 맞물려 다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필수의료, 지역의료 문제부터 해결해보자. 정부 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힘을 모아야 한다. 분과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의사)의 생명도 구하는 필수의료 문제의 꼬인 매듭을 풀어보자.

응급실에서 힘들게 응급처치를 해도 원인 치료를 할 수 있는(배후 치료) 의사가 없다. 갈수록 심장-뇌혈관질환은 늘고 있는데 이를 수술할 의사는 사라지고 있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다시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빨리 조성해야 한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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