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꼬여 버린 의대증원 문제”... 가장 큰 피해자는?
[김용의 헬스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과 정부의 줄다리가 6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응급실 뺑뺑이’ 등 응급의료 체계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의사가 없어 아예 응급실을 닫는 병원들도 늘고 있다. 현장에서 근근이 버티던 의료 인력의 피로도는 한계에 왔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으로 이뤄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29일부터 전국 병원 61곳에서 파업에 들어간다고 예고했다. 실제로 총파업이 실행되면 ‘의료 공백’은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이웃들...
병원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특히 아픈 사람이 있는 가족은 “제 때 치료받을 수 있을까?” 불안감이 상당하다. 실제로 몇 개 월 전 예약한 진료 일정이 갑자기 취소될까 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나도 ‘진료가 취소될 수도 있다’는 병원 측의 문자를 몇 번 받은 후 가까스로 예정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의료계 취재를 오래 한 나도 불안감을 느끼는 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이웃들이다. 가족이 아파도 한밤중에 ‘응급실 뺑뺑이’를 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왜 우리 이웃들이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할까?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힘겹게 유지되던 대학병원 시스템은 간호사마저 떠나면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비록 수술실 등 필수의료 인력은 남는다고 하지만, 입원 병동을 지키는 간호사들의 공백은 어떡할 것인가? 갑자기 몸 상태가 악화되면 간호사부터 찾던 환자들을 두고 볼 것인가? 또 각종 검사를 담당하는 의료기사의 공백은? 가뜩이나 정상 운영이 어려웠던 의료 시스템이 총체적 난국을 맞을 수도 있다.
“왜 우리가 애꿎은 피해를”... 간호사 등 병원 종사자들의 항변
보건의료노조는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동안 간호사들은 병원 측의 권유로 전공의 업무를 떠안은 채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왔다. 체계적인 교육 없이 갑자기 진료 지원(PA) 간호사로 투입된 경우도 있다. 의사 신분인 전공의가 하던 업무다. 이는 현행 의료법 상 불법이다. 현재 정부와 병원 경영진이 이런 편법을 묵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부인이 이에 불만을 갖고 소송을 하면 간호사만 애꿎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재판 기간 내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병원 내부에선 지금도 PA 간호사 존재를 쉬쉬하고 있다.
여야는 PA 간호사 합법화 등을 담은 간호법의 8월 처리에 합의했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의 갈등이 불거질까 봐 잠시 주춤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간호사들은 병원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무급휴직으로 내몰리는 등 의정 갈등에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의료기사, 병원 행정직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부러워했던 안정된 직장인이 하루 아침에 명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병원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왔는데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심정일 것이다.
응급실마저 파행의 연속... 너무 꼬인 의료 현장, 두고 볼 것인가
그동안 일부 대학병원들은 전공의들의 저렴한 인건비와 장시간 근무 시간을 토대로 문어발식 확장을 해왔다. 수도권에 분원까지 차려 가뜩이나 환자 감소로 고사 위기에 있던 지역 중소병원, 동네병원들의 원성을 사왔다. 그런 대학병원들이 전공의들이 사라지자 불과 몇 개월 만에 경영난을 호소하며 직원들의 고용 불안까지 야기하고 있다.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 직원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위기에 대응하는 게 병원 경영의 핵심인데 너무 속수무책이라는 느낌이다.
외래 진료와 입원·수술의 연쇄 차질에 이어 대학병원의 상징과도 같았던 응급실마저 파행의 연속이다. 전공의가 떠나자 전문의, 교수들이 잇단 과로로 탈진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제 의료 현장은 ‘총체적 난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병원 구성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다. 다른 병원의 구조조정 소식이 우리 병원으로도 불어 닥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 의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평범한 우리 가족, 이웃들이 나라를 걱정한다
뭐니 뭐니 해도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가족, 이웃들이다. 몸이 아프면 “그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있을까? 수술이 가능할까?” 이런 고민부터 한다. 한밤중에 넘어져서 이마에서 피가 많이 흐르면 응급실을 떠올리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뇌가 다쳤을까?’ 겁도 많이 난다. 하지만 “나는 응급실 치료 대상일까”부터 떠올려야 한다.
전공의-정부의 줄다리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 겨우 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의료 시스템, 아니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
나는 노년의 환자다. 9월초 CT검사와 진료가 예정돼 있다. 몸 상태도 오락가락하는데, 왜 혹시나 하며 이런 의료분란 사태까지 걱정해야 하나? 정부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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