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누다 주변이 핑크빛으로? 이 현상 뭐길래
어떤 자극에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현상, 공감각…성관계 중 색을 보는 사례도 보고
우리 뇌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5가지 주요 감각에 의존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한다. 하지만 어떤 감각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영역의 감각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현상이 있다. 바로 공감각(synaesthesia)이다.
공감각을 경험하는 사람은 어떤 정보가 들어오면 동시에 두 개 이상의 뇌 영역을 통해 정보를 처리한다. 즉, 어떤 감각 정보가 들어오면 일차적으로 입력된 감각을 경험하고, 이차적으로는 실제로 원인이 되는 감각의 입력이 없는데도 또 다른 감각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들을 때 색을 보기도 한다. 또는 글을 읽을 때 입안에서 맛을 느끼기도 하며, 밝은 색을 보거나 조용히 움직이는 물체를 볼 때 소리가 들리는 사람도 있다.
공감각은 질환이나 장애가 아니다. 건강에 해를 끼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다만 특정 뇌 관련 질환의 증상일 수는 있다. 인구 중 최대 4%가 공감각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공감각을 경험하는 방법은 150가지가 넘는다는 보고가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사람들이 공감각을 경험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뇌의 신경 회로 배선이 다를 것으로 추정한다. 가령, 색을 ‘듣는다’고 보고한 사람들의 뇌를 스캔한 결과, 소리를 들을 때 뇌의 반응이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공감각을 가진 사람은 감각을 제어하는 뇌 영역 사이가 더 많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가장 흔한 공감각 증상 중 하나는 글자, 숫자, 소리를 색으로 ‘보는’ 것이다. 또는 모양이나 패턴을 보면 소리가 들리거나, 물체를 손으로 만지거나 특정 냄새를 맡을 때 소리가 들린다는 사람도 있다.
성관계 중 주변이 핑크빛으로 밝게 변하고 사물이 선명해지는 사례
2022년 이란 정신의학 저널(Iranian Journal of Psychiatry)에는 공감각에 관해 매우 흥미로운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이란 마슈하드대 연구진이 보고한 내용으로, 건강한 한 남성(31)이 아내와 성관계 중 절정에 달했을 때 주변 사물이 더 선명해지고 주위가 밝아지며 분홍빛으로 변한다는 케이스다. 환자는 실제로 주변은 어두웠지만 주변이 마치 이른 아침인 것처럼 환해졌다고 설명했다.
의사였던 이 남성은 처음엔 항우울제인 설트랄린(Sertraline)을 복용해 치료를 시도했다. 하지만 3개월 후 결국 근처 병원을 찾았고 정신과에 의뢰됐다. 의료진은 여러 가지 시력 검사를 실시했지만 색각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다. 성기능 장애 징후도 없었다.
의료진은 시각 장애와 기저 질환이 없는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공감각 진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오르가슴 중 색을 보는 공감각은 매우 드문 유형이라고 말했다. 보고서 저자들은, 실제로 공감각 증상을 보이는 사람 중 약 1%만이 성관계 중 색을 본다는 보고가 있다고 설명했다.
진찰 중 의료진은 이 남성이 과거에 다른 공감각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렸을 때 심장판막증을 앓았던 그는 심한 가슴통증이 있을 때마다 주변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가슴통증 외에 다른 통증이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으며, 가슴통증은 성인이 되어서까지는 계속되지 않아 커서는 그런 느낌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의료진은 성관계 중 나타나는 공감각 사례를 조사하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성관계가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강도로 여러 가지 색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관계를 시작할 때는 주황색, 관계 중에는 노란색, 절정에 달했을 때는 분홍색을 본다는 보고가 있다.
해당 보고서는 “이번 사례는 오르가슴 중 색을 본다는 희귀한 형태의 공감각과 특정 통증으로 인한 색 공감각이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서도 “다만, 설문이나 시각적 연구를 통해 테스트할 수 있는 다른 유형의 공감각과 달리, 오르가슴 중 색을 보는 공감각은 감각을 자극하는 실험 연구가 전무해 연구가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