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간호사 8390명 뽑아 놓고...76%는 미발령 상태"

간호협회 "채용 간호사 불법 내몰려...간호법 제정 절실"

대한간호협회 기자회견 현장에서 탁영란(오른쪽) 간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임종언 기자

의정 갈등이 6개월 이상 이어지는 가운데 청년 간호사들이 발령 지연으로 큰 고충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신규로 채용된 총 8390명의 간호사 중 일을 하지 못하는 미발령 대기자가 6376명(76%)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20일 서울 중구 간협 서울연수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탁영란 간협 회장은 "상급종합병원에 채용됐으나 지금까지 발령이 무기한 연기된 신규 간호사가 76%에 달한다"며 "대부분 대형병원들이 내년 신규 간호사 모집 계획마저 없어 예비 간호사들이 고용절벽에 내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간협 조사에 따르면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올해 졸업한 간호사를 채용한 기관은 고작 1곳에 불과했다. 또한 올해 총 8390명(신규·경력)의 간호사가 채용됐지만 일을 하고 있는 발령자 수는 1888명(23%)에 그쳤다. 6376명(76%)은 합격했음에도 일을 못하고 있는 미발령 상태인 셈이다.

미래 간호사 채용 계획을 가진 병원도 4곳 중 1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협이 상급종합병원 총 41곳을 대상으로 물어본 결과 현 의정 갈등 사태가 안정되면 채용하겠다는 병원은 10곳에 불과했으며 31곳이 '올해는 더 이상 채용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간협 측은 간호사들이 채용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채용이 되더라도 '불법 진료'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 진료 지원(PA)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는 간호사의 진료 지원 업무를 명시해 법적으로 보호하는 사업이다.

간협에 따르면 정부가 시범사업을 제안한 총 387개 의료기관 중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은 151곳(39%)으로 절반에 못 미쳤다. 미참여 의사를 제시한 의료기관은 152곳, 무응답을 한 기관은 84곳 이었다.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은 "사업에 미참여하거나 무응답한 61% 기관에서는 여전히 불법진료가 자행되고 있었다"며 "실제로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의료기관에 근무하면서 고발당한 간호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최 위원은 정부에서 PA 간호사 업무 자격에 '임상경력 3년차'라는 제한을 두었지만 병원에서 이를 잘 지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시범사업을 하는 의료기관이라도 진료 지원 업무에 대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 없이 고작 30분~1시간 교육 후 바로 투입된다"며 "참여 기관 151개 중 126곳에서 3년차 미만 간호사를 업무 전환해 PA간호사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최 위원은 "간호사들이 불법 진료에 노출되면 결국 그 악영향이 환자들에게 미친다"며 △간호법 등 간호사의 법적안전망 구축 △전담(진료 지원)간호사 수련체계 마련 △적정간호사 배치기준(상급병원 기준 환자 1인당 환자 수 5) △공정한 보상체계 마련 등을 주장했다.

현재 간호법은 여야가 합의해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 부쳐질 전망이다. 다만 이 법을 두고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특정 직역에만 이익을 줘 직역 간 분쟁을 야기해 국민 건강권을 위협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전날 임현택 의협 회장은 "오는 22일까지 정부·국회가 간호법 입법을 중단하지 않으면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기도의사회 역시 같은 날 성명서를 통해 "간호법은 의료인 면허제도를 규정한 의료법의 근간을 흔들고 무면허 의료행위를 합법화해 국민 건강을 심각히 위협할 뿐 아니라 한국 의료의 미래를 없애는 악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간협은 이러한 의사단체 압력에 무대응을 고수할 전망이다. 최 위원은 "(간호법과 관련한) 의사단체 반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이들은 의료전달체계가 훼손되고 의사 고유 업무를 침해해 환자를 위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어떠한 근거나 결과를 제시하지 않고 (단지) 이럴까 봐 식으로 반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럴 것이라는 추측에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임종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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