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철 교수 "렉라자 임상 성공은 사명이었다"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 FDA 승인... "국내 바이오제약 대형 모멘텀"

조병철 교수가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 임상 개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코메디닷컴 DB]
“우연이 여러번 모이면 필연이 된다고 하죠. 스쳐 지나간 렉라자가 다시 돌아와 저를 만나게 된 것, 렉라자와 리브리반트를 함께 개발하게 된 절묘한 타이밍. 이런 모든 것들이 정말 운명처럼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이 매년 50만명이나 발생하는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하리라 확신합니다.”

조병철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연세암센터 교수는 코메디닷컴과 인터뷰에서 유한양행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와 얀센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의 임상시험을 맡은 것은 '운명같은 만남'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에 대한 2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이 가져다 줄 기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렉라자, 리브리반트, 병용요법 임상시험 도맡아

그는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의 1상, 2상, 3상 임상시험을 주도했다. 그뿐 아니라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각각의 중개연구부터 1~3상 연구를 모두 이끌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렉라자는 EGFR(상피세포성장인자 수용체)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삼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다. 존슨앤드존슨(J&J)의 리브리반트는 EGFR 뿐만 아니라 MET(중간엽상피전이인자)라는 유전자 변이도 함께 표적으로 삼는다.

병용요법은 리브리반트가 EGFR과 MET를 차단해 종양세포의 신호 전달을 억제하는 동시에 렉라자가 암세포 안으로 신호를 보내는 효소(티로신키나제)의 활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항암 효과를 극대화한다.

EGFR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1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현재 최신 비소세포폐암 표준치료제는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다.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은 무진행생존기간(암의 진행이나 악화 없이 생존하는 기간) 등에서 타그리소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 시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이런 이유로 존슨앤드존슨은 병용요법의 2025년 예상 매출액이 최대 50억달러(약6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FDA 승인에 따라 병용요법이 출시되면 유한양행은 존슨앤드존슨으로부터 약 6000만달러(약 825억원)의 로열티를 수령하며 판매에 따른 일정액을 받게 된다.

"신약 임상이 암 치료 지평 확장"

폐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게 될 줄 신약이 탄생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렉라자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FDA 허가까지 이르는 과정을 소개하는 조 교수의 얼굴은 만감이 교차한 듯 감동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특히 후발 약품이라는 이유로 국제학회에서 찬밥 대우를 받았던 시절은 조 교수가 감당해야 할 아픔이었다. 조 교수는 그 길을 두고 "신약 임상만이 치료의 지평을 확장하는 일이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렉라자가 국내 첫 FDA 승인 항암제가 됐다. 처음에 어떻게 만난 건가.

“그야말로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2013년 고종성 박사(제노스코 대표)가 자기가 개발한 약을 테스트해보고 싶다며 미국에서 한국을 찾아 왔다. 하지만 그때 내 연구실은 연구간호사가 6~7명만 있는 소규모 랩실이었고, 함께 할 만한 상황이 못 됐다. 그 후 싱가포르에 연수 갔다가 2년 만에 다시 들어왔을 때 유한양행 남수연 박사로부터 함께 후보물질을 개발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보여준 게 2년 전에 만났던 그 물질이었다. 2년 새 유한양행이 제노스코의 모회사인 오스코텍으로부터 후보물질을 사온 것이다. 당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게 뭐지?’였다.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한 인연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의 임상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이 타그리소 단독요법보다 효과가 좋은 것으로 입증됐다. 병용요법의 무진행생존기간은 23.7개월로 타그리소의 16.6개월보다 30%가량 향상된 효과를 보였다. 부작용도 대부분 조절 가능한 정도였다. 동양인과 서양인에게서 모두 효과적으로 나타났고, 인종 간 차이는 없었다.

-임상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많았을텐데.

“처음 렉라자 개발을 시작했을 땐 늦었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특히 국내 연구진조차 안 될 거라고 단정 짓는 게 가장 힘들었다. 중간에 남수연 박사가 유한양행에서 퇴사하면서 내부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유한양행 이정희 의장과 조욱제 대표의 뚝심과 믿음 덕분에 연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학회에서 무시당하는 것이었다. 임상 개발 초기에 렉라자는 국제적으로 찬밥 신세였다. 글로벌 학회에 임상데이터를 가져가면 하찮은 것처럼 취급하며 무시해 1시간 내내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유일한 박사에 감명...렉라자를 사명으로 받아들여"

-그렇게 힘들었는데 계속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솔직히 말해 내가 엄청 부지런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소명의식이 있으면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한다. 렉라자를 연구하는 동안 우연히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가 ‘헐벗고 굶주리며 질병에서 허덕이는 국민들을 구하기 위해 제약회사를 설립했다’는 말을 접했고, 이 말이 마음에 가득 찼다. 그 때부터 연구를 통해 국가에 보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렉라자가 내 사명이 된 것이다. 그 후로는 정말 자식처럼 생각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마음으로 개발했다. 무생물인 약에 생명력이 생겨야 암환자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었고, 머리도 많이 빠졌다. 그래도 인생에서 이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뿌듯하고 감사하다.”

-이번 승인은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단 한국은 늘 바이오 강국이 되고 싶어 했지만, 대표할 만한 약이 없었다. 세계적인 약이 되기 위해서는 전 세계 의사들이 그 약을 처방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전 세계 환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는데 렉라자가 그 희망을 이룰 만한 첫 번째 약이 된 셈이다. 또한 매년 50만명의 환자가 생기는 시장에서 독점을 저지할 만한 우수한 대안이 생겼다는 점도 굉장히 중요하다.”

-경제적 측면에서 의미는.

“국부 창출 측면에도 주목해야 한다. 타그리소가 올해 국내에서 보험 수가가 적용됐는데 그 약만 있었더라면 보험 재정이 연간 수천억원 축났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데 렉라자가 동시에 급여 적용이 되면서 정부가 가격 협상을 할 수 있었고, 재정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전 세계 환자들이 사용하게 되면 국내로 돈이 들어와 국내 바이오산업이 더 활성화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병용요법이 가져올 기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의사들이 병용요법을 적극 사용하게 될까.

“안타깝게도 4기 EGFR 폐암 환자 중에서 1차 약을 쓰고 2차 약으로 넘어가는 비율이 60~70% 밖에 되지 않는다. 내성이 생기고, 상태가 나빠지는 환자들이 많아 2차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전체 생존기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병용요법 같은 더 좋은 치료제를 우선적으로 사용해서 치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렉라자 단독요법도 FDA 승인받을 가치 충분"

-앞으로 렉라자의 확장 가능성은.

“렉라자와 타그리소를 직접 비교한 연구 결과가 다음달 세계폐암학회에서 발표된다. 전체 EGFR 돌연변이의 70%에 해당하는 고위험군(간전이·뇌전이 등)에서 렉라자 단독요법이 타그리소 대비 더 좋은 효과를 보였다. 이 데이터를 통해 렉라자가 단독요법으로도 FDA 승인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은 비정형 돌연변이 환자에서도 기존 치료제에 비해 무진행생존기간이 2배 이상 길어지는 효과를 보였다. 비정형 변이는 전체 EGFR 돌연변이의 10%를 차지하는데 병용요법이 광범위하게 쓸 수 있는 치료옵션임을 입증하는 결과다.

-타그리소와 항암화학요법을 병행한 임상시험 결과가 잘 나오면서 한때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의 기대감이 꺾이기도 했다. 병용요법이 정말 타그리소의 독점을 막을 수 있을까.

최근 렉라자와 피하주사(SC) 제형의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이 환자 편의성뿐 아니라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증진한다는 데이터가 나오면서 타그리소·항암화학요법은 논외 대상이 됐다. 정맥주사는 병원에 3주마다 방문해야 하고, 와서 6시간을 대기하는데 이런 과정을 5분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 다수의 영향력 있는 전문가를 만났는데 그들로부터 '1차 선택지는 렉라자와 리브리반트(SC) 병용요법'이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끝으로 FDA 허가를 받은 감회를 표현하자면.

“정말 기쁘지만, 그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너무 벅차다. 감사한 마음만이 가득하다. 앞서 말한 운명적인 만남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가끔은 하늘이 ‘너는 이걸 열심히 하게끔 만들어진 사람이야’라고 지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열심히 한다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 뿐이다.”

    천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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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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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k*** 2024-08-22 10:34:56

      아주 유익한정보 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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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ya*** 2024-08-21 07:09:17

      유일한박사님 만큼 대단하시고 감사드립니다. 많은 환자들의에게 완치의 희망과 현실이 되길 기원합니다. 관계자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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