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누가 산과 의사 하나?”...분만 할수록 손해, 산부인과 현실은?

[김용의 헬스앤]

산부인과, 특히 산과 의사가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는 분만 담당 대학교수 요원까지 미달 현상이 번지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아기를 받을수록 적자가 나요. 여기에 불가항력적인 사고라도 나면 의사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어요.”

산부인과, 특히 산과(産科) 의사의 고단함은 미디어 등을 통해 많이 알려진 편이다. 의사도 생활인인데 임산부를 돌봐서 건강보험으로 받는 돈(수가)이 너무 적다. 주위에선 의사는 모두 돈 잘 버는 직종인 줄 알고 있어 난감할 때가 많다. 분만사고로 소송에 휘말리면 파산하기 십상이다. 아기를 받는 산과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집에서도 대기하기 일쑤다. 본인도 피곤하지만 가족들 볼 낯이 없다. 산부인과 중에서도 산과 의사를 기피하는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원가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가... 손해 보면서 아기 받는다

산부인과 병원의 수가 수준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큰 병원들은 구색 맞추기 ‘산부인과’ 명패만 걸어 놓고 분만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건강보험 진료에 따른 원가 보전율(100% 기본)이 산부인과는 6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분만을 늘릴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다. 역시 수술을 하는 안과의 원가 보전율 139%, 진료 지원 분야인 방사선종양학과 252%와 비교하면 ‘수준 차이’가 상당하다. 이는 국회 김 윤 의원(보건복지위·민주당)이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종일 대기해서 밤잠을 설치며 아기를 받아도 병원 적자만 늘리게 된다. 동네 산부인과가 사라진 이유는 저출산 영향도 있지만 수익 구조 상 도저히 병원 운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방송에서 병원에서 먹고 자며 아기를 받는 동네 산부인과 의사의 일상이 소개된 적이 있다. 그는 병원의 적자가 너무 쌓여 간호사들에게만 힘겹게 월급을 지급하고 본인은 집에 생활비를 거의 못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존경받는 의사였다. 그의 병원을 거쳐 간 임산부들이 아기와 함께 방문하는 날이 가장 행복한 시간인 듯 했다.

과거 의대 1등이 선망하던 진료과... 이제는 기피 과가 된 이유?

과거 산과 의사는 의대 1등이 선망하던 진료과였다. 의대에서도 공부를 잘 해야 산과 전공의가 될 수 있었다. 외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생명을 다루는 ‘바이털(vital)’ 분야가 인기 절정일 때의 얘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힘든 분야를 기피하는 사회 풍조가 의료계에도 몰려온 데다 수가가 너무 낮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과의 원가 보전율은 모두 100%를 밑돌았다. 산부인과 61%, 내과 72%, 소아청소년과 79%, 외과 84% 등이다. 진료를 열심히 할수록 손해가 나는 분야... 이러니 누가 지원할까?

많은 전문가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도 산부인과, 특히 산과 의사는 늘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역 병원은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다. 별다른 유인 정책이 없는 데다 의대생에게 산과를 선택하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도 없다. 큰 종합병원에서도 제왕절개 등 수가가 워낙 낮아 명목상 산부인과 간판만 걸어 놓는 형태가 될 수 있다. 병원 경영진은 산부인과를 키우면 적자만 누적되니 소수의 산과 교수를 채용해 현상 유지만 바랄 뿐인 것 같다. 산과는 소송 한번 당하면 배상액이 워낙 커 경영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산과 의사들도 “너무 무섭다”며 소송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지역·필수의료 상황 갈수록 악화... 생존을 걱정하는 지역 병원들

이런 풍조는 지역 필수의료 몰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도권 의대 출신들이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지원을 꺼리니 그 빈자리를 지역 의사들이 올라가 채우고 있다. 이들이 떠난 지역·필수의료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제는 병원 생존마저 걱정할 처지다. 의대 증원 이슈가 7개월째 병원을 뒤흔들면서 환자들이 급격히 감소해 간호사, 행정직을 대상으로 무급 휴직, 명예퇴직을 내건 지방 사립대병원이 나오고 있다.

매년 막대한 저출산 예산... 그 일부라도 분만 의사 지원할 순 없을까?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 인상은 또 ‘찔끔 인상’에 그칠 수 있다. 수가는 건강보험 보험료를 각 분야가 나눠 갖는 ‘한정된 파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방, 외국인까지 가세해 건강보험 파이는 더욱 쪼그라들고 있다. 건보 재정 적자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특정 진료과 수가만 파격적으로 올리는 것은 큰 어려움이 따른다. 정부가 이미 제안했던 별도 특별 회계를 통해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분만사고의 경우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방안도 빨리 강구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바짝 신경 쓰고 있다. 하지만 출산율이 올라도 아기 받을 의사가 없으면 나라를 뒤흔드는 또 다른 이슈가 될 수 있다. 저출산 대책 못지않게 산과 의사 확보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매년 수십 조 원이나 되는 저출산 예산의 일부라도 분만 의사 지원에 돌리면 어떨까?

특단의 상황에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한정된 현행 수가 예산으론 떠나는 산과 의사를 붙잡을 순 없을 것 같다. 최근 고령 산모가 늘면서 고위험 분만이 일상이다. 숙련된 산과 의사가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다. 내 딸의 분만 예정일이 눈앞인데 의사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지금 바로 ‘산과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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