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환자, 타지도 못할 자전거 새로 산 까닭은?

‘다신 할 수 없는 일들’ 아쉬워…죽음 순순히 받아들이면 삶에 감사할 수 있어

죽음을 코앞에 앞둔 사람은 죽음을 상상만 하는 사람에 비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때 훨씬 더 긍정적인 언어를 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호스피스 완화치료는 말기 환자가 남은 시간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죽음을 앞둔 사람은 크고 작은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많다. 하지만 순순히 또는 덤덤하게 죽음을 맞으며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호주 비영리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은 임종이 가까워질수록 행복감을 더 느낀 일부 환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들 환자를 겪은 임상 심리학자의 입을 통해서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어느 날 임상심리클리닉에 요한이라는 남성 말기 암환자가 혼자 찾아왔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그와 인생, 관심사, 관계, 삶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두 번째 방문 땐 목발을 짚고 왔다. 요한은 “한 쪽 발에 문제가 생겨 답답하지만, 자전거 타고 몽블랑을 일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 생일을 맞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일부 말기환자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다시는 못하게 될 일이 참 아쉬워”

죽음을 코앞에 둔 요한에게 가장 큰 부담은 ‘죽음의 순간’ 그 자체가 아니었다. ‘다시는 할 수 없게 될 모든 일들’이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세 번째 방문 때 그는 목발도 더 이상 짚을 수 없었다.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왔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탔던 영상을 봤다. 다른 사람들이 몽블랑에서 자전거 타는 영상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었다” 고 말했다.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매우 비싼 산악자전거를 주문했다고 말했다. 뜻밖의 일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자전거를 사고 싶었는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새로 산 자전거를 직접 탈 순 없지만, 거실에 두면 멋질 것 같다”고 말했다. 네 번째 방문 때는 휠체어를 타고 왔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요한에겐 꼭 싶은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는 “만약 기적적으로 살아난다면,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가사돌봄 서비스를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원봉사자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파트에서 나올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요한은 배달된 산악자전거를 소파 옆에 놓아둔 채,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통증 조절 가능한 것도 행복”…죽음 앞두고, 긍정적인 언어 쓰는 사람 많아  

또 다른 사례는 영국 구호활동가 사이먼 보아스(47)다. 그는 암 투병 생활을 솔직히 털어놓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달 15일 숨진 그는 생전에 BBC 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통증도 조절되고 있어, 매우 행복하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국제학술지 ≪심리학(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죽음을 앞둔 사람은 죽음을 그냥 상상만 하는 사람에 비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때 훨씬 더 긍정적인 언어를 쓴다. 이는 죽음의 경험이 적어도 덜 불쾌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보아스는 BBC 인터뷰에서 “삶을 즐기고, 의미 있는 경험을 중시해야 한다.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면 삶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긍정적인 태도가 아내와 부모님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철학자 세네카 “삶 준비하기 전에 죽음 준비해야”…쾌락 추구 삶’→‘의미 찾는 삶’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우리는 삶을 준비하기 전에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충분히 오래 살았다는 판단은 나이나 세월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토르 프랭클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춰 ‘실존 심리치료’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인간의 의미 찾기’라는 책(1946)을 남겼다. 프랭클은 암 환자의 의미 감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의미 중심 심리치료’를 발전시켰다.

최근 학술지 ≪완화 및 지지 치료(Palliative and Supportive Care)≫와 ≪미국 호스피스 및 완화치료 저널(American Journal of Hospice and Palliative Care)≫에 죽음과 관련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연구팀은 무엇이 죽음에 임박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답변의 주류를 이룬 것은 쾌락을 추구하는 삶에서 의미와 성취감을 찾는 삶으로의 전환, 자연과 함께하기 등 소소한 즐거움, 긍정적인 사고방식, 사회적 관계 등이었다.

생명이 위험한 병을 앓는 환자는 슬픔과 함께 행복을 느낀다.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들 환자는 하루에도 감사, 후회, 그리움, 분노, 죄책감, 안도감 등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존재의 한계를 똑바로 보면 관점이 넓어진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삶 자체에 큰 감사를 드릴 수 있다. 죽음을 맞는 태도가 매우 중요한 까닭이다.

    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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